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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무기 20년의 교훈과 김대중의 해법

1차 북핵위기와 김대중의 일괄타결론

최경환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3/04/11 [09:27]

북한 핵무기 20년의 교훈과 김대중의 해법

1차 북핵위기와 김대중의 일괄타결론

최경환 칼럼니스트 | 입력 : 2013/04/11 [09:27]
북한핵 문제가 국제적인 한반도 이슈로 등장한 것은 20년전이다. 1993년 3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를 탈퇴하면서 1차 북핵 위기가 발생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핵을 가진 자와는 악수할 수 없다”며 북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보인다. 정계은퇴 후 영국에 체류중인 김대중은 주고받는 협상을 통한 일괄타결을 주장한다. 즉, 북한은 핵을 완전히 포기하고, 북미관계정상화를 통해 체제안전보장, 경제지원을 해주는 주고 받는 협상을 제안한 것이다. 김대중의 이러한 주장은 국제사회에서 크게 주목받게 된다.
▲ 최경환     ©브레이크뉴스

1994년 5월 13일 김대중의 미국 내쇼날프레스클럽(NPC) 연설은 유명하다. 북한의 핵문제로 한반도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을 때였다. 미국 클린턴 정부의 펜타곤은 북한에 대한 정밀타격 방식의 선제공격을 탁상 위에 놓고 준비했다. 한반도 전쟁 시나리오가 실행단계로 옮겨지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이 연설에서 김대중은 앞서 말한 주고받는 협상과 일괄타결을 주장하고 미국의 카터 대통령을 북한에 특사로 보낼 것을 제안한다.

김대중의 제안은 실현됐다. 카터 대통령이 평양으로 날아가 김일성 주석을 만나고 북미대화가 시작되고 그해 10월 ‘제네바합의’가 이뤄진다. 이 ‘제네바합의’에서 북미는 북한은 핵을 포기하고 북미수교협상, 체제안전보장, 경수로 지원 등을 약속한다. 당시 대북강경론에 빠져있던 김영삼 정부는 회담장에도 들어가지도 못하고 기웃거리는 ‘왕따’ 신세가 된다.
 
김대중의 마지막 연설문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2009년 7월, 김대중 대통령은 서울에 있는 유럽연합상공회의소에서 강연요청을 받고 연설문을 작성한다. 연설문 제목은 ‘9.19로 돌아가자’였다. 이 연설은 7월 14일 하기로 돼있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하루전인 7월 13일 폐렴 증상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연설문은 낭독할 수 없었다. 병원에 입원한 김 대통령은 43일만인 8월 18일 이 세상을 떠났다. 생애 마지막 연설문은 이렇게 낭독하지 못한 유고 연설문이 되었다.

김 대통령의 마지막 연설문, ‘9.19로 돌아가자’에서 말하는 ‘9.19’는 ‘9.19공동성명’을 말한다. ‘9.19공동성명’이란 2005년 노무현 정부 시절 남북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참여한 6자회담에서 합의한 북핵 해결 방안을 담은 문서이다.

‘9.19공동성명’의 내용은 이렇다. 북한은 핵을 완전히 포기하고, 북한과 미국은 관계정상화를 이루고,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을 한다는 내용이다. 또 이 성명에는 6국이 장차 동북아 평화안보체제를 만드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행동 대 행동’이라는 단계적 실천방안도 포함되어 있다. 김대중이 야당 시절에 앞서 주창하고, 재임중에는 미국의 클린턴과 부시, 북한의 김정일, 중국의 장쩌민 등을 만나 설득한 북핵해법 구상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두 개의 트랙을 가진 ‘햇볕정책’
 
‘햇볕정책’은 두 개의 트랙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남북간 반세기가 넘는 냉전상태에서의 대결과 반목을 거둬내고 남북한 간에 화해, 협력하는 것이다. 둘째는 한국전쟁 이후 계속된 북한과 미국의 대결 상태를 해소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북미, 북일관계 정상화(국교수립), 북한핵문제 해결, 동북아(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의 목표가 포함된다. 이 두 가지는 김대중의 동북아 평화구상 ‘햇볕정책’의 요체이다.

첫 번째 목표는 두 차례(2000년, 2007년)의 남북정상회담, 개성공단 건설, 금강산관광, 이산가족 상봉 등으로 실제적인 성과를 거뒀다. 두 번째 과제는 부침을 겪는다. 제네바합의(1994년), 9.19공동성명(2005년) 등 협상과 대화를 통한 해법이 추진되기도 했지만, 협상과 제재를 반복하는 일관성 잃은 미국의 태도와 이에 맞선 북한의 핵실험과 로켓발사로 오늘날까지 북미간 줄다리기는 이어지고 있다.

두 개의 트랙은 각자의 해법을 추구하지만 사실상 한 몸통처럼 연계돼 있다. 김대중은 두 트랙, 즉 남북관계 발전과 북미관계 정상화를 하나로 묶어 이른바 ‘한반도 냉전체제 해소’라는 ’포괄적 접근 방식’을 추구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과 미국은 화해 무드로 들어간다.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고, 북한의 조명록 차수가 워싱턴을 방문하면서 북미공동커뮤니케가 발표되는 등 북미간 대화가 진척됐다. 또한 일본의 고이즈미 수상이 평양을 방문하면서 북한과 일본과 수교협상도 진행됐다.

그러나 이 화해무드는 네오콘이 장악한 조지 W.부시 정부가 들어서면서 변화를 맞는다. 2002년 미국이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지목하면서 북미간 대결상황으로 다시 돌아가고 만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부시를 설득해 대화국면으로 돌리고자 노력했으나 막무가내 부시의 태도를 돌려놓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김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2003년 2월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이러한 가운데 한 가닥 희망이 생겼다. 부시 대통령의 일방주의 정책은 세계 곳곳에서 암초를 만나고 미국 국내에서도 지지를 받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는 이 기회를 잘 활용했다. 2005년 6자회담을 통해 9.19공동성명을 합의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노무현 정부 이후였다. 2008년 새로 들어선 이명박 정부는 처음에는 실용주의적 대북접근을 천명했지만 금강산에서 관광하던 민간인이 피살되면서 대북강경정책으로 돌아선다.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의 출발점이라 할 6.15공동선언과 10.4선언도 방기했으며, 북핵문제의 해결책인 6자회담도, 9.19공동성명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부시 정부를 이은 오바마 정부는 당초의 기대와 달리 당사자인 한국 이명박 정부의 대북강경태도, 우경화된 일본 정부에 동조해 대북정책에서 ‘무시 전략’으로 일관했다. 그사이 북한은 핵 능력을 키워갔다. 오바마 대통령은 동북아와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 경륜이 부족했다.
 
‘9.19선언으로 돌아가자’
 
여기에서 분명히 해두고 넘어갈 것이 있다. 북핵의 역사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햇볕정책이 북한 핵 개발을 도왔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또한 강경정책이 북한 핵개발을 제지할 수 있다는 주장은 더욱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대화와 협상이 이루어질 때 북핵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지만, 강경정책으로 압박과 제제를 가할 때 북한의 핵 능력은 강화되었다. 또한 햇볕정책이 안보를 소홀히 했다는 주장도 옳지 않다. 김대중 대통령은 햇볕정책은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을 항상 강조했다. 햇볕정책은 안보를 위협하는 근원적인 문제인 냉전체제와 적대관계를 해소하자는 것이다.

지난 20년 북한핵의 역사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두 가지 해법이 반복되었다 할 수 있다. 한편은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법(김대중-클린턴)이었고, 다른 한편은 압박과 제제를 통한 해법(이명박-부시)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북한이 핵보유국 단계까지 진입한 지금 두 가지 해법 모두 실패로 끝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해법은 전자에서 찾을 수밖에 없고, 성공의 길 역시 그 길밖에 없다. 북한에 대한 압박과 경제제제는 중국이 북한을 껴안고 있는 한 효과가 없다. 이번 3차 핵실험 이후에도 미국과 일본, 유엔은 다양한 제제와 봉쇄, 압박의 수단을 제시하고 있다. 1,2차 핵실험 때와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조치가 북한이 핵을 포기할 만한 실질적인 압박으로 느낄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또한 한국사회에 보수진영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한국의 핵무장론, 선제타격론, 미국 전술핵 반입 등의 주장은 미국이 이것을 용인하지도 않을 것이며 결코 해법도 아니다.

이제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난 20년 북핵 역사를 돌아보고 2005년의 9.19공동성명을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마지막 유고 연설문은 이렇게 끝난다.
 
“미국은 ‘관계정상화를 통한 비핵화'라는 근본적이고도 포괄적인 접근방법으로 전환할 때가 되었습니다. 평화협정, 외교관계 수립, 경제협력 등 근본적인 문제 해결과 함께 핵 폐기를 실현하는 일괄타결방식으로 한반도에도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오늘의 북핵문제 해결방안은 북한은 핵을 완전히 포기하고, 미국은 관계정상화를 통해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길뿐입니다. 이 외에 대안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원칙에 합의한 바 있습니다. 2005년 9월 19일 6자회담의 공동성명, 그것을 준수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미국도 좋고, 일본도 좋고, 중국도 좋고, 러시아도 좋고, 한국도 좋고, 북한도 좋은 것입니다. 다시 9.19 선언으로 돌아갑시다. 그리하여 동북아시아에 평화와 안전, 협력의 시대를 열어갑시다.”(2009년 7월 14일, 김대중 유럽상공회의소 미발표 연설문),
 
박근혜, 담대한 비전과 실천 보여주길
 
20년 북한 핵의 역사에서 우리가 교훈을 삶아야 할 것이 있다. 북한 핵문제는 본질적으로 북미관계에서 파생된 것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남북관계를 절대적으로 규정하는 문제라는 점이다. 아무리 남북관계가 좋아진다 해도 북한핵이 있고 북미간 적대관계가 계속된다면 공염불이다. 김대중의 햇볕정책이 남북관계를 개선하는데 큰  성과를 거두었지만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북미관계 악화와 핵문제 때문이다.

북한 핵문제는 한국 정부가 자신의 구상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노력할 때 해법의 실마리가 풀렸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김대중의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미대화, 북일수교 협상이 진척되었고, 노무현의 6자회담과 9.19공동성명도 한국 정부의 주도적인 노력의 결과물이다. 

반면, 미국과 중국, 일본은 당사자인 우리와 다르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우리는 미국이 북핵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것으로 기대했지만, 오바마 1기 정부에서 북핵문제는 대외정책 우선순위에서 이라크 등 중동문제에 밀렸고, ‘전략적 인내’라는 말로 4년을 허비했다. 또한 중국은 순망치한의 관계인 북한을 껴안고 갈게 분명하다. 일본은 자국의 우경화, 군사화 전략에 오로지 북핵을 이용할 뿐이다. 이처럼 당사자인 한국 정부가 밑그림을 그리고, 로드맵을 제시하지 않는 한 주변국은 움직이지 않을 게 분명하다.

박근혜 정부가 대화와 주고받는 협상, 한국정부의 주도적인 노력이라는 두 개의 원칙을 붙들고 나가기를 바란다. 김영삼 정부, 이명박 정부처럼 제제와 압박만을 외친다면 남북관계는 더욱 꼬이고, 북한의 핵능력은 더욱 커지고, 심지어 미국이나 중국이 북한과 협상 국면에 들어갈 때에는 아무런 발언권도 갖지 못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자신이 내세운 ‘한반도신뢰프로세스’를 실천할 용의가 있다면, 북한핵을 해결할 의지와 소명을 갖고 있다면, 북한은 물론, 미국, 일본, 중국을 이끌고갈 담대한 구상을 세우고, 담대한 실천을 시작해야 한다. beyondi@hanmail.net

※필자/최경환. 칼럼니스트. 그는 김대중 대통령을 마지막까지 보좌한 비서관이었다. 지금은 (사)김대중평화센터 공보실장, (사)행동하는 양심 상임이사로 있다.


원본 기사 보기:브레이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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