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박정희 대변인’을 자처하는 글쟁이이다. 그러므로 박정희-박근혜 양 대통령에 관련되어 내가 할 이야기는 뻔하고 ‘안 봐도 비디오’이다. 고로 두 대통령에게 대하여 별로 긍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지 않은 독자 분들은 이 글을 읽지 않으시기를 권한다.
뭐, 읽고 댓글에서 비판을 하시는 것도 한 옵션이기는 하다. 어쨌든 안 봐도 비디오인 점은 미리 말씀 드리는 바이다. 내가 ‘박정희 대변인’을 자처한다는 이야기는 본 브레이크뉴스에 2012년 7월 6일자 칼럼에서 밝혔다. 검색에서 ‘심상근’ 치고 페이지 열리면 ‘기자’ 선택하면 300개 정도 칼럼이 뜨는데, 그 중 한 칼럼이다. 그 칼럼에서 이야기하였듯이, 박통(박정희 대통령)은 나를 지칭하여 “남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다”라는 평을 하였다. 1975년 봄이었다. 박근혜 당시 영애가 퍼스트레이디 대행을 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고로 박통은 ‘남의 사정을 잘 아는’ 필자가 그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하여 긍정적일 것으로 나는 여긴다고 작년 7월 6일자 칼럼에서 썼다. 그리고, 이러한 나의 셀프-임명 self-appointment에 반대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박통의 맏딸뿐이라고 나는 그 칼럼에서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나의 셀프 임명에 반대하기는커녕, 박근혜 당시 의원은 나의 그 칼럼에 달린 댓글을 글자 하나 바꾸지 않고 기자협회 초청 단독 토론회에서 인용하였다: “한 인터넷 칼럼에 들어가 보니 그 칼럼 댓글에서 어느 독자 분이 이야기하시기를, “5.16을 혁명이라 부르건 쿠데타라 부르건 5.16이 일어났다는 사실과 5.16이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꿔놓았는가 하는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로써 나의 셀프-임명은 박근혜 현 대통령으로부터 인준을 받았다. 나는 지난 18개월 간 한 가지 일만 하였다. 그 것은 박근혜 의원-비대위원장-경선후보-대선후보의 정치행적을 분석하는 일이었다. 미국에서 보내주는 연금 받으며 18개월 간 이 일에만 매달린 데에는, 그 맏딸이 아버지의 역사적 위상에 누를 끼칠 것을 우려하는 것이 큰 동기였다. 그렇지 않아도 종북과 진보에서 주야로 박통을 씹는데, 박통의 맏딸이 정치에서 잘못하면 “그 것 보라고! 그 아버지나 그 딸이나…”하고 기고만장할 것이다. 나의 이 두려움은 앞으로 4년 11개월 간 더 지속될 것이다. 민족 최대의 영웅인 박통이 딸의 실정으로 누를 입는 것은 불가이다. 그러므로 나는 항상 마음이 항상 조마조마하다. 경제민주화, 창조경제, 뭐 그런 아리송한 이야기를 들으면 뭔 이야기인지 조마조마해 죽겠다. 오늘도 교보문고에 가서 두 시간 이상을 책을 뒤졌다. 그 면에서, 박통령(박근혜 대통령)이 대선에서 낙선되었으면 내 마음은 오히려 편했을 것이다. 진담이다. 뭐 수천 년 완전 망하지 않고 버티어온 한민족이 박통령이 나서지 않는다고 갑자기 망하겠어? 그러나 박통령의 생각은 안 그런 모양이다. 2012년 1월 첫 주, ‘SBS 힐링캠프’에서 한이 서린 한 마디를 하였다: “어떻게 일군 나라인데!” YS 시절의 IMF 금융구제사태를 두고 한 이야기이다. 그 사태를 목격하며 정치입문을 결심하였다고 이야기하였다. 그 직전 대선에서 정책자문을 하던 나는 이회창 당시 당 총재에게 “나가서 영접하는 모양새를 취하시라!”고 권하였다. 그리고 1976년에 펴낸 나의 저서 ‘백만 명 먹여 살리기’ (도솔)을 그 박통의 딸에게 부쳤고, 그 이후 나의 칼럼을 이메일로 노상 보내었다. 당시, 나의 영웅인 박통의 딸이었으므로 예의를 갖춘 것이다. 그리고, 박통을 위하여 그의 딸이 반드시 성공하기를 기원하였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박통의 역사적 위치이다. 박통은 나를 평하여 ‘남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하였었다. ‘사정’이라는 단어는 묘한 선택이었다. 어쨌든 오늘은 박통과 박통령(박근혜 대통령)의 사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나는 박통이나 박통령에 대하여 소위 심층 분석을 한 책을 읽은 적이 없다. 일부러 피한다. 왜냐하면, 나는 안 봐도 비디오로 느끼기 때문이고, 어설픈 분석은 나를 식상하게 한다. 박통과 박통령의 불행은, 극히 특이한 존재들이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그 것은 한없는 외로움이다. 집권 직후 5.16 동지의 집에 다녀오는 길에 박통은 거의 죽음에 이르는 외로움에 시달렸다: “그러려고 혁명한 것이 아닌데…” 그 동지는 진시황처럼 살고 있었다. 박통을 추종한 근본적 동기는, 권력을 얻은 후 현금으로 치환하는 것이었다. 자기 마음만 믿고 데리고 일했던 박통은 뼈를 깎는 고통과 고독으로 몸을 떨었다. 그 것은 절망에 이르는 외로움이었다. 그러나, 그 동지들이 받쳐주지 않으면 언제고 길에 끌려 나와 린치를 당하여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처지였다. 박통은 그러므로 한없는 외로움 속에서 경제부흥을 추진했다. 그러나 박통에게는 바다와 같은 위안이 있었다. 육영수 여사였다. 육영수 여사가 없었다면 박통은 없다. 육영수가 존재하므로 박정희는 존재하였다. 박정희의 뼈를 깎는 청렴과 살신성인의 애국심은 육영수라는 토양에서 번창한 나무이다. 이는 진실이다. 육영수 여사가 세상을 떠났을 때, 박통은 이미 죽은 것과 다름 없었다. 김재규의 총을 맞고 쓸어질 때 박통은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괜찮아…” 그제야 그는 자유롭게 되어 먼저 보낸 아내에게 갈 수 있었다. 그 것은 일종의 해방이었을 것이다. 아니, 귀향이었을 것이다. 육영수 여사가 떠난 후, 박통은 이따금 맏딸의 침실 앞에서 서성거렸다고 한다. 이미 잠든 것 같아 기척은 못하고, 그렇게 맏딸의 방 밖에서라도 서성거리는 것이 자기 침실에서 홀로 있는 것 보다 나았던 것이다. 박통은 보기보다 여리고 박통령은 보기보다 강하다. 육영수 여사가 떠난 후 딸이 아버지에게 기대기보다 아버지가 딸에게 기대었을 것이다. 안 봐도 비디오이다. 밥상에 앉으면 박통은 나라 걱정 국민 걱정만 했다. 집안 장래니 그런 이야기는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이는 박지만 군이 인터뷰에서 증언한 바이다. 그는 관상학적으로 그런 거짓말은 결코 안 할 타입이다.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다. 박통이 그렇게 지긋지긋하게 노상 나라 걱정 국민 걱정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육영수 여사가 받들었기 때문이다. 육영수 여사 자신이 지극한 애국자였다. 둘째, 맏딸이 받들었기 때문이다. 막내의 두 자녀는 훨씬 더 정상적인 사람들이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다. 박통-육영수-박근혜는 독종들이다. 애국 애족 이런 추상적 신념을 위하여 그렇게 만사 젖히고 집중할 수 있는 것은 독종들에게만 가능하다. 그 아래 두 자녀는 선택이 없었을 것이다. 대세에 눌려 수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독종 3 대 보통사람 2. 다수결로도 진다. 게다가 셋은 윗사람들이었다. “전방은 괜찮은가요?” 뭐, 그랬다고 전한다. 독하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지만 군에게는 정말로 이상한 누나로 보였을 것이다. “누나는 왜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해?” 물으니, “지식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니?” 말도 안 된다. 학교 공부, 그렇게 재미있지 않거든! 나는 소설 읽는 것을 훨씬 좋아했다. 인터뷰에서 그 이야기를 꺼낸 것을 보면 지만 군도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모든 각도에서 볼 때, 박정희-육영수-박근혜 팀은 실제로 연구대상이다. 한 가족 내에 그렇게 셋이 일심동체로 이상한 예는 극히 드물다. 박근혜 할아버지는 영남 양반집 장손의 신분에서 동학운동에 가담한 죄로 문중에서 쫓겨나서 평생 지독한 가난 속에서 살았다. 그 유전인자가 오늘까지 뻗어온 것이다. 그리고 아주 우연히, 옥천 99칸 대부호의 딸 육영수 여사도 그러한 강한 유전인자를 타고난 것이다. 세 식구들 사이에서, 복권 일등 당첨하기만큼 희귀한 조합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한 애국애족은 개미와 벌들 사이에서는 흔하다. 자신의 이익 앞에 공동체 이익을 앞세우고, 공동체 이익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받치는 유전인자는 개미와 벌에게 공통된다. 앵글로색슨에게도 애국애족은 강하다. 영국 명문대 동창들은 공중석상에서 만나도 눈으로만 인사를 한다. 그리고 매사에서 공과 사를 칼날처럼 엄정하게 구분한다. 민초들에게 지도자로서의 입지를 지키기 위함이다. 영국과 미국을 다스리는 앵글로색슨이 수백 년 이상 해지는 적이 없는 제국을 견지해 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유태인들도 그러하다. 아랍과 전쟁이 났을 때, 의족을 붙인 젊은이가 불구 사실을 속이고 입대하려다 걸린 적이 있었다. 의족을 달고 나가서 싸우다 죽겠다는 것이다. 환장을 해도 이상하게 환장을 한 것이다. 그 것이 이스라엘 국민들의 애국애족이고, 이스라엘이 그 숱한 아랍국가들 사이에서 버티는 근본적인 힘이다. 일본인들도 그러하다. 일본인들은 일본을 위해서는 스스로를 낮추고 희생한다. 그와 정반대가 한민족이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진실이다. 대한민국은 수천 개의 씨족단체들의 집합이다. 국가가 아니다. 그 수천 개 단체들의 구성원들의 충성심은 단연 그 단체에 있다. 국가의 이익은 한참 먼 두 번째 세 번째이다. YS가 애국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 다만 현철 씨와 그의 동문을 이익을 챙긴 후, 아주 먼 두 번째 우선 순위로서 애국을 하는 식이다. 결과는 물론 무참하다: 한보사태, IMF금융구제… 마찬가지로, 영남인들의 충성심은 우선 영남에 있고 고로 대선에서 80%+가 묻지마 몰표를 던진다. Ditto with 호남인! 지난 칼럼 ‘박근혜 정부의 국민행복과 사랑의 엥겔지수’에서 나는 아래와 같이 썼다: “사회 속에서 여러 모습으로 협력해 서로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 동문”이라며 “여유 있을 때 기여하고 힘들 때 찾아오라!” 이는, 박근혜 정부에서 크게 약진한 성균관 대학 동창회 회보에 실린 글이라고 중앙일보가 전했다. 현직 장관이 장관 후보 지명 직전 즉 2월에 올린 글이다. 예측한대로, 그 성균관대 출신 고급 관료들, 즉 법무장관과 민정수석이 요즈음 도마에 올랐다. 오늘 3월 23일 동아일보 기사를 인용하자면: “검사장급 검찰 고위간부가 법무부 차관에 임명되자마자 ‘성접대 의혹’이라는 희대의 사건이 불거졌다. 과연 그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2월 13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황교안 전 부산고검장을 법무부 장관에 내정했다. 이후 황 장관의 경기고 1년 선배인 김 전 차관의 차관 발탁설이 돌기 시작했다. 당시 사정당국 관계자들은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민정수석실에 “성접대의 실체가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자 민정수석실에서는 “동영상이 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당시에도 김 전 차관이 등장하는 성접대 동영상이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은 이때까지만 해도 동영상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다. 경찰이 동영상을 손에 넣은 것은 20일이다. 민정수석실은 경찰 보고를 바탕으로 김 전 차관에게 사실 관계를 물었고, 김 전 차관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펄쩍 뛰었다고 한다. 청와대의 여러 관계자들은 민정수석실에서 이 같은 의혹과 해명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즉, 민정수석실은 어떻게 해서라도 법무부장관의 1년 고등학교 선배를 차관 직에 앉히려고 노력을 했다는 뉴앙스를 상기 기사는 강하게 풍기고 있다. 흠… 최초 여성대통령의 입지와 처지보다는 동창관계가 더 중요하다? 그런 이야기는 설마 아니겠지?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영어 표현으로, ‘팔을 비틀어서도’ 성사시킨다?” (인용 끝) 어제 오늘 이틀 간, 민정수석실은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의혹들이 있었지만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당사자는 아니라고 잡아떼는데 어쩌겠느냐? 그래서 지명을 하게 되었다!” 그런 식의 변명이었다. 그 게 말이 되는 변명인가? 만약 대통령이 법무장관과 민정수석과 함께 성균관대학 동문이었다면, 그리고 그 김학의 법무차관 지명자가 아무 연고가 없었다면, 같은 결정을 했을까? Never! 김학의 지명자보다 동문인 대통령을 보호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동창관계로 망하는 나라이다. “여자를 뒤에서 안고 노래하다가 성교를 하는 장면… 그 뒤에서는 여러 명이 지켜보고 있고…” 뭐 그런 개소리 같은 소문이 떠도는 데, 확인이 안 되어 그냥 지명하도록 처리했다? 그러다가 확인이 되면? 그리고 설령 그 동영상의 인물이 아니고, 당시 그 곳에 있지 않았다손 치더라도, 그 당사자들과 알고 있었다면 그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다. 고위관료에게는 그러한 연루는 미국에서도 치명적이고 사퇴의 사유가 된다. 사적으로 협박을 받게 되고 국가 기밀 내지 정보를 넘겨주게 될 수 있는 소위 compromised situation이 되기 때문이다. 박통과 박통령의 외로움은, 주위 정치인들이 그들을 이용하려고만 든다는 점이다. 박정희-육영수-박근혜의 살신성인적 애국심은 그들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그냥 한 자리하고 동창들에게 주르르- 자리 나누어 주고, 그래서 동창회에 가면 영웅대접 받고… 박통이 5.16 직후 혁명동지 집에 다녀오면서 차 안에서 시달리던 그 외로움은 1960대 초의 일이었다. 그 후 50년이 흐른 후, 박통령은 그 아버지의 외로움을 겪는 것이다. 박통과 박통령은 측근들에게 봉이다. 박통령(박근혜 대통령)은 박통보다 강하다. 박통은 혹간이라도 속을 내보이고 심지어 노한 표정을 짓고 호령을 할 성향이다. 박통령은 그보다 더 강하다. 참는다. 이 점은 링컨과 아주 유사하다. 요즈음 링컨 영화를 보고 야단들인데, 나는 성경보다 더 두꺼운 영어로 된 원본 소설을 아주 예전에 읽었다. 걸작이다. 링컨은 화를 내지 않는다. 왜? 목적의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화를 내면 우선 속이 시원하다. 그러나 링컨은, 긴 시간을 두고 손익을 따졌을 때 참는 것이 이득이라고 계산한다. 링컨과 박통령의 계산은 이렇다: “참으면 측근들이 더 어려워한다. 그리고 물린 것이 있게 된다. 고로 장기적으로 그들을 다루는 것이 더 용이하며, 그들은 물린 것을 보상하기 위하여 더욱 노력을 할 것이다.” 뭐, 이런 식으로 계산하는 타입이다. 강하고 독하다. 나 같은 보통 사람은 그 계산이 아무리 맞다 손치더라도, 우선 성질이 나서 참기 힘들다. 그리고, 다른 고려도 있다. 총리가 성균관대학교 출신이다. 원래, 이러한 경우, 총리가 나서서 정리를 해주는 것이 정석이다. 막 시작한 새 정부에서 대통령이 나서서 총리 후배를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므로 요즈음 신나는 것은 민주당과 진보당과 언론들이다. 아주 살판 났다. 박통령은 유전인자적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강하다. 그리고 애국애족이 인생목표이므로, 그 강한 것이 더 강해진다. 신념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고로, 대통령은 묵묵히 앞만 보고, 국민만 보고 갈 것이다. 엄청 강한 사람이다. 말도 못한다. 우리 같은 보통사람에게는 불가사의한 수준이다. 그리고, 산전수전 다 겪은 국민들은 실제로 박통령 편이다. 언론보다 국민들이 더 현명하다. 3월 18-21일 간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82%가 박통령에게 기대를 표하고 있다. 긍정적 평가 44%, 보통이다가 8%, 유보 즉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가 30%, 도합 82%가 기대를 표시하고 있다. 이 결과를 언론은 뒤집어 이야기한다. 기사 타이틀로서 ‘44%만 지지!” 이런다. 독자로 하여금 [100% - 44%], 즉 56%는 반대하는 것처럼 타이틀을 단다. 반대 즉 부정적 평가는 18%에 불과하거든! [긍정적이다]+[보통이다]+[평가하기에 너무 이르므로 지켜보고자 한다], 그 셋의 도합이 82%이다. 그 게 왜 문제인데? 언론의 장난이 너무 심하다. 아버지 즉 박통의 경우에도 민초들은 반대를 하지 않았다. 당시에 살았던 국민들은 지금 60세 이상이다. 지금도 그들의 80% 이상이 박통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박통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그 90% 이상이 종북들의 기획이고 작품이다. 김지하 시인과 같이 독립적인 의견으로 가지고 반대를 한 경우도 있었지만 이는 소수점 이하이다. 90% 이상은, 남한의 경제적 비약을 저지하려는 종북의 기획이다. 이는 국민들 대부분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종북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금도 박통 씹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는 북한의 노선에 직결되어 있다. 내가 오래 전부터 주장하듯이, 북한은 노선을 수정하여야 한다. 현 체제를 수정하라는 주장도 아니다. 현 체제 무너지면 자칫 중국의 괴뢰정권이 들어서게 될 것이다. 광물도 중국에게 거의 몽땅 50년 계약으로 넘겨준 터에 정권조차 중국괴뢰정권이 들어서면 큰일이다. 핵무기 보유 노선은 수학적으로 실현가능성이 영이다. 미국 때문이 아니다. 이스라엘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결코 북한의 핵무기를 수용하지 못한다. 미국의 외교정책의 근간은 이스라엘의 뜻을 반영한다. 아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변하지 못한다. 문제는, 감정적으로 발전하는 양상이다. 미국인들이 북한을 정말로 혐오하게 되면 미국과의 정상적 관계 수립은 완전히 물 건너간다. 미국 민초들이 이란, 중동 테러리스트들처럼 북한을 감정적으로 혐오하게 되면 북한에게 치명적이다. 미국을 통하지 않고는 어느 나라도 부강해질 수 없다. 미국에게 져주면 잘 살게 된다. 미국 국민들이 아량을 베풀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앵글로색슨 내지 백인들의 특징이다. 오만이라고 보아도 된다. 그러므로 미국에게 진 독일, 일본 등은 미국의 도움으로 떼부자가 되었다. 반면 미국을 이겨낸 베트남은 지금도 거지 나라이다. 버티고 있는 큐바도 거지 나라이다. 중국도 미국의 비위를 맞추어 주면서 잘살게 되었다. 비위 안 맞추면 우선 유학생도 안 받아준다. 첨단기술발전은 물 건너 간다. 수출도 불가능하다. 클린턴 대통령 시절, 백악관에 북한 사절단이 왔는데 나는 크게 실망하였다. 온갖 훈장과 휘장을 걸치고 왔다. 미국인들에게는 아주 이상하게 보였고, 거만하고 위압적으로 보였다. 그렇게 보이고 잘 사는 나라, 지구 상에 하나도 없다. 앞으로도 결코 없을 것이다. 잘 살려면 미국인들에게, “그래, 너희들이 제일 잘 났다!” 그래야 한다. 그러면 막 퍼준다. 진실이다. 미국을 제압하려는 기색을 보이면 결코, 백 년이 가도, 잘 살지 못한다. 나는 직원 일만 명 규모의 미국 최대 핵무기 개발 국방연구소에서 근무하였다. 미국, 힘으로 못 꺾는다. 전쟁이라면 회를 치고, 정말로 살벌한 데가 있는 사람들이다. 이라크를 전투기로 칠 때, 그들은 귀에 이어폰을 끼고 락앤롤을 들으며 폭격했다고 한다. 그 것도 좌우 몇 십 센티 정밀도를 가지고 친다. 그들에게는 비디오 게임이다. 이에 대하여 미국 언론들이 규탄을 하였지만, 천 년 전에도 그 사람들, 전쟁이라면 회를 쳤고, 그들을 이겨내는 장사 없었다. 이는 진실이다. 우선, 유전인자가 육식동물적이다. 그리고 유일신 종교 문화인지라, 각자 홀로 선다. 근 2천 년 간, 자녀들의 진짜 아버지는 예수라고 가르쳤다. 낳아준 부모는 그들을18세까지 맡아주는 대리 부모로 인식되었다. 그러므로 오늘도 미국에서는 만 18세가 되면 원칙적으로 부모를 떠난다. 대학을 가건 주유소에 취직하건 떠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므로, 전쟁에서 용맹하다. 죽어도 한국에서처럼 부모 친척들이 통곡을 하고 그러지 않는다. 죽으면 하느님에게 돌아갔다고 믿고 부활한다고 믿으면서 근 2천 년 살아온 탓에, 죽음을 대하는 것이 우리와 아주 많이 다르다. 앵글로색슨, 당하기 힘들다. 이는 진실이다. 전쟁이라면 회를 치는 인종이다. 천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래 너희들 잘 났다!” 그러면서 등 긁어주는 것이 최선이다. 애들 대하듯 해야 한다. 앵글로색슨, 그 면에서 상당히 단순하다. “잘 살려면 미국에게 져주라!” 이는 공공연한 상식이다. 독일, 일본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미국 이기는 것은 저주이다. 베트남을 보면 알 수 있다. 맞은 놈이 베개 높이고 잔다는 속담은 미국에 관련하여서는 정말로 진실이다. 북한이 미국을 이겨내고 약코 죽이려고 하면 실수이다. 천 년 이상 성공한 예가 없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대 북한 신뢰 프로세스’는 믿어도 무방하다. 믿지 않는 이야기 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sheem_sk@naver.com *필자/심상근. 미 버클리대 박사. 칼럼니스트 원본 기사 보기:브레이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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