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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집권 5년은 우리국민이 선택한 길!

국민에게 길을 묻다-20

추성춘 생활정치아카데미 이사장 | 기사입력 2012/12/30 [23:56]

박근혜 집권 5년은 우리국민이 선택한 길!

국민에게 길을 묻다-20

추성춘 생활정치아카데미 이사장 | 입력 : 2012/12/30 [23:56]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좋은 사람이나 대통령이 될 만한 자질이나 객관적 자격은 별로 갖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열렬하게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이 말은 1932년 월터 리프만이, 루즈벨트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직전에 한 말이다.(민주주의의 성공조건. 박봉환 전 동력자원부 장관 지음.)
 
그러나 리프만의 이 분석만은 틀렸다. 리프만의 예상과는 달리, 루즈벨트는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불황에 떨고 있는 국민을 안심시키고,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는 자격·자질이 뛰어났고, 미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위기를 가장 훌륭히 극복해 낸 대통령’으로 평가 받게 된다. 그런데, 리프만의 관찰에서 주목할 부분도 있다. 바로 “루즈벨트는 가장 열렬하게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고 판단한 점이다. ‘나는 (죽기 아니면 살기가 아니고) 그저 죽기로 하고 대통령이 돼야 한다!’ 요컨대, 국가 최고 통치자가 되겠다는 사람은 “본인 스스로가 가장 열렬하게 되고 싶어 해야”, 요즘 말로 하면 권력의지와 열정이 분수처럼 샘솟고,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겨야, 선택 받음은 물론, 그 자리에 가서도 성공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다.
▲ 추성춘  이사장  ©브레이크뉴스

가령, “국민이 출마하라고 해서 (당초 생각이 없었으나)” 또는 “충성스런 동료들이 등을 떠밀어서”(권력의지도 별로 없었는데)라고 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시사점이 아니겠는가. 필자는 박근혜 당선자의 권력의지가 전 현직 대통령 누구보다도 약하지 않다고 본다. 이것이 그를 승리로 이끌어 낸 힘의 원천일 것이라고 믿는다. 한국이 IMF 위기로 흔들릴 당시, 정치인 ‘박근혜’는  “국가 장래가 어떻게 될지, 노심초사해, 심야에 울먹이면서 서울거리를 방황 했었다고 한다.”(박세일 한반도 선진화 재단 이사장 증언) 그가 정치를 하는 동력은 애국심이라는 설명이다. “테러를 당하면서도 건져진 목숨은, 덤이다” (힐링 캠프 출연)
 
정치인이, ‘그때 죽을 수 있었다. 몰락할 수 있었다.’라는 절망의 끝자락에서, 천신만고 끝에 희망을 살려냈다면, 닥쳐오는 곤란은 곤란으로 이해하고, 어떠한 위기도 회피하지 않으며 정면으로 대처하고 극복하는 낙천적 리더십의 소유자가 되는 법이다.
 
소아마비를 극복한 루즈벨트의 낙천적 리더십은 대공황의 미국을 구했고, 인종차별을 뛰어넘은 오바마의 사생관은 세계 위기관리 리더십의 교과서가 되고 있지 않은가. 국가위기관리 능력에 기초한 정치적 지도력은 정치인의 삶 자체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여기서 권력의지가 배양된다고 보는 것이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취임 연설에서 “100일 이내에 눈에 보이는 업적을 제시 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1935년 최초의 과학적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이 설립되자 대국민 여론조사를 활용, 대공황 극복을 위한 자신의 뉴딜정책에 반기를 든 의회세력을 진압하는, 강한 권력의지를 보인다. 루즈벨트는 여론을 추종한 것이 아니라 의회 반대세력을 자신의 지지 세력으로 만들기 위해 국민의 힘을 배경으로, 여론을 기획해서 정치무기로 활용한 것이다. 이 점에서 ‘여론’이라는, 유권자의 분위기에 편승해 이리저리 흔들리는 일반 정치인들과 구별 된다,
 
아무튼 지금도 민주주의 국가들은, 정권이 탄생해 새로운 개혁정책을 펼치려면 ‘최초의 100일’이 결정적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한다. 새 대통령이 어떤 정책을 치고 나오느냐, 국가 운영의 굵은 뼈대가 속속 밝혀지고 ‘시간과의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1990년 대 말, 영국 블레어 노동당 정권은 취임 후 불과 40일 안에 경제·금융개혁 전반의, 완전한 ‘정책화’에 성공 한다. 또 정권 발족 2개월 만에 정부지출 삭감을 실천에 옮겨, 대처 수상의 보수당 정권도 이루지 못했던 ‘작은 정부’를, 노동당 정권이 실현 했다. 영국의 모든 경제개혁 정책은 정권발족 1년 안에 <정책화-실행-성과>로 이어진 것이다. 레이건 미대통령, 대처 영국 수상도 1년 안에 세제개혁을 단행 한다. 그러나 영국에서의 ‘40일’이 한국의 구조로는 ‘4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한다. 박근혜 차기 한국대통령의 경우, 비교적 ‘준비된 대통령’으로 평가 받기는 하지만 그래도 영국처럼 집권 전에 ‘그림자 내각’ 같은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최소 몇 년 동안에 걸친 정책의 기획·입안이라는, 조직적이고 총체적인 집권준비가 부족한 실정이라고 본다.
 
여기서 잠시 ‘박근혜 리더십’의 원형을 파악하기 위한 마중물로, 우선 ‘선거의 여왕 박근혜’에 관해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이기는 선거의 비결’을 말 할 때는 선거전략 등 기술적 측면이 관심사다. 그러나 ‘선거여왕’ 자신은 정작 ‘전략’이라든지 하는 ‘정치기술’에 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고 한다. 그의 15년 정치생활에 당내 경선 말고는 저 본 선거는 없다. 십 수 년 전, 달성에서 국회의원 첫 출마 때 동행 취재한, 당시 일본 유력 신문 서울특파원은 “박 후보가 후보인사를 다니는데 동네길, 밭두렁 논두렁을, 걷지 않고 ‘뛰어다니면서’, 한 사람 한 사람 일일이 손을 잡고 인사했던 모습이 인상적 이였다고 기억한다. 선거연설이 화려했다거나 그런 소리는 없다. 
 
그를 취재한 기자들도,  박 당선자는 여전히 말과 행동이 이른바 ‘정치적’이질 않다고 보는 것 같다. 거대담론이라든지, 정치적 비전을, 정치인적 표현으로 과장하는 것 같지도 않다. 어쩌면 자기표현이 서툴고 자신을 내세우는 것을 아예 싫어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가 그랬다. 과장이 없는 것도 박정희 대통령을 닮은 듯하다. 박정희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정치적 언행을 싫어했던 ‘비정치적 대통령’으로 인식됐으며, 자기표현에도 소극적이거나 이를 극도로 절제했다.
 
1970년대 초 광주에서 열린 전국 새마을 지도자 대회장. 1만 여명의 새마을 지도자들이 모인가운데 경북 청도군의 새마을 지도자 한 분이 악전고투 끝에 일궈낸, ‘우수 새마을 성공사례’를 발표하고 있었다. 단상 한 쪽에 자리한 박 대통령은 하얀 손수건을 꺼내들고 연신 눈시울을 닦고 있었고 새마을 지도자들도 두 주먹으로 눈물을 훔쳤다. 성공사례 발표가 끝나고, 박 대통령은 지도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답례하고, 지금 기억으로는 ‘대통령의 말씀’이 없이 그대로 퇴장했다. 1만 여 새마을 지도자들은 모두 일어나 큰 박수로 대통령을 환송했을 뿐, 거창한 ‘대통령의 대회사’를 듣지 못한 것을 섭섭해 하지 않았다. 단상에서, 새마을 지도자의 ‘눈물겨운 성공 스토리’를, 눈물을 참으며 경청한 대통령의 모습에서 이미 대회장은 큰 공감으로 휩싸였고,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분위기였다. 박 대통령의 독특한 ‘자기표현의 절제’가 거꾸로 설득과 공감 확장이라는 순기능으로 나타난 것이다.
 
필자는 젊은 기자시절 ‘잘 살아 보세’라는 새마을 운동 성공사례 다큐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새마을운동 취재 전담 기자’였는데, 담당 취재부서가 새마을 운동의 정부사령탑인 내무부( 지금은 변형돼 행정안전부)였기 때문이다. 고건 전 국무총리가 그 당시 내무부의 새마을 담당 서기관으로 맹활약하던 시기이다. 박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박  대통령은 그 당시 수원 농촌진흥청 건물에 마련된 사회 각계 지도자들의 새마을 연수 교육장(내각의 국무위원과 정부고위직, 시도 지사, 기업 대표, 새마을 취재 전문 언론인 등이 새마을 지도자들의 새마을 성공사례를  직접 듣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을 가끔 찾아 왔는데, 이른바 ‘대통령의 행차’였음에도, 교육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그저 조용히 와서 교실 뒤에서 수업장면을 지켜보다 돌아가곤 한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새마을 운동 취재 중에 박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대 여섯 번 만난 적이 있으나 웃는 모습은 기억에 없고 그냥 관계자들의 보고를 경청하는 모습 정도만 남아 있어 좀 차갑게 느껴진다는 생각 이였는데, 청와대를 취재를 했던 한 선배 기자는 그의 ‘박정희론’에서 “ 박정희는 정치를 미워했지만 사람을 미워하지 않았고, 너그러웠고 잔정도 많았다”고 쓰고 있다.   
 
아무튼, 필자는 선거기간 중 TV토론장의 박 후보의 모습에서, 과장되고 화려해 보이는 정치적 언동을 극히 꺼려했던 박 대통령의 생전 모습을 떠올렸다. 박 당선자도 자기표현이 서툴고 말이 부족하기는 아버지를 뛰어 넘을 수 없을 것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화려한 언설과 선동적인 비전을 말하지 않아도, 특히 아버지처럼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지 않아도 사람들은 따르고 선거는 이긴다. 필자는 박 당선자의 ‘숨겨진 리더십·카리스마의 정체는 그의 강력한 권력의지와 서민성(庶民性)이라고 본다. 그의 정적들이 아무리 ‘공주’라고 부르고 화려했던 퍼스트레이디 시절을 일깨우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의 서민성이 역으로 강조 될 뿐이다. 그는 말도 표정도, 패션도 화려하지 않다. 감동적인 스토리로 유권자를 유혹할 능력도 없어 보인다. 관행적으로 보면 정치인으로서 ‘정치적’인 매력은 없는 셈이다. 과장되거나 정치인으로서 연출되는 것을 싫어한다면 보통사람 스타일 아닌가.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난 그의 아버지는 18년의 장기집권을 했지만 서민의 애환을 가장 잘 이해한 대통령 이었다. ‘한국 근대화의 아버지’와 ‘반민주적 독재자’라는 양극의 평가는 앞으로도 역사가 수렴해 가겠지만, 차기 대통령이 된 그의 딸이 아버지의 인간적인 서민성을 이어 받았으리라고 생각된다.
 
한편 최고 통치자에게 있어, 국민설득을 위한 정치적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필수불가결하며 정치도 생활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한 이성만으로 부족하고, 정서와 감정이 정치를 움직이는 세상이다. 자기표현이 서툴고 어휘가 부족하다고 해서, 이것이 리더십의 질이나 통치능력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최고관리자라면,  ‘무엇’을 말하는 것 못지않게 ‘어떻게’ 말하는 것이 대 국민 소통의 질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편 다행인 것은 박근혜대통령 시대는 슬로건이 주름잡는 이른바 ‘열광하는 정치’를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치란 단 한방의 요술방망이로 단숨에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반걸음, 때로는 한걸음씩 꾸준히 우리의 생활을 개선해가는 것이라는, 당연한 상식이 국민적 정서로 자리 잡을 기회라고 본다. 이제 우리나라도 정치인들이 환상을 부채질 하고 낭패감을 확산시키는 ‘환상·환멸의 정치’를 졸업할 때가 됐다.   
민생, 민생, 그리고 민생.
 
18대 대선을 지켜보면서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민주당은 상대 후보를 ‘공주 후보’라고 비판하면서 자신들을 ‘서민 후보’로 불러달라고 했다.  그러나 정작 팍팍한 삶의 문제, 민생문제를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후보를, 결국 ‘얼굴 없는 서민 후보’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유권자가 찾고 있고, 보고 싶었던 후보는 ‘서민·중산층의 얼굴과 마음을 갖춘 후보’였다. 18대 대선은 한마디로 민생민주주의의 진검승부였다. 민생(民生)이란 중국의 혁명가 쑨원의 지적대로 ‘국민의 생활·생계, 사회의 생존, 민중의 생명이다. 한국이란 나라의 유지와 안정을 제일로 하는 것이다. 우리들 공동체의 안전과 먹이(食)를 지키는 것. 공동체가 없어진다면 민주주의도 평등도 아침이슬일 뿐이다. 공동체란 것은 라틴어로 레스푸불리카, 국가를 말한다고 하는데, 한국정치는 공동체를 어떻게 정의 하는가?

다행인 것은 중산층의 복원이 선거과정에서 정책적 조명을 받은 것이다. 중산층은 공동체의 허리이며 등뼈이다. 중산계급이 두터운 나라는 사회적 통합에서도 유리할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핵심은 온건한 민주주의가 형성 된다는 사실이다. 두터운 중산층을 갖는 다이아몬드형의 나라는 온건한 민주주의 정당이 설 자리가 넓어지고, 그만큼 과격주의 정치세력은 한쪽 구석으로 몰리게 된다. 중산층이 두터워지면 민주주의는 안정된다. 중산층 강화와 사회통합과 정치적 안정은 한 길로 통한다. 이것이 이번 선거를 관통한 시대정신 아닌가. 이를 무시한 채, 민주당은 당 안에 이른바 ‘선거기술자’가 너무 많다는 세간의 지적대로, 너무 공학적(?)으로 선거 과정을 몰고 간 것이 아닌가.
 
민주당의 메시지에 <민생>과 <노동> 이 없거나 너무 희미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것은 ‘단일화’로 귀착되고 이것이 처음이자 끝이었으니까.
박근혜정부는 서민·중산층 정부

박근혜정부는 무엇보다 선거 때 약속대로, 또 이 시대의 요구대로 서민과 중산층에게 웃음을 되찾아 주는 데 그가 위임 받은 권력의 힘을 집중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기위해 안정되고 강력한 정권기반이 중요하다. 정권의 체력이 부실해 보이면 출범 초 선명했던 개혁이미지는 곧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우선 집권층의 권력구조에서, 박근혜정부는 여당과 행정부를 일원적으로 운영함으로서 권력의 누수현상과 힘의 분산을 막아야 한다. 과거 개발독재시대의 행정민주주의를 답습하자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국내외적으로 엄혹한 정치경제환경 속에  ‘위기의 상시(常時)·상태(常態)화’가 한반도를 뒤덮고 있다는 현실, 이 리얼리티를 고려하면 ‘대통령이 해야 할 일’에 관한한 강고한 리더십의 기틀이 마련돼야하고, 때로는 ‘합의의 정치’를 ‘신념의 정치’로 바꾼 마거릿 대처의 한국 버전이 요구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결단과 신속한 대응이 요구될 경우 무엇보다 대통령 자신이 여당을 흡수·통제함으로서, 정부가 여당 쪽에 일방적으로 끌려가거나, 여야의 당리당략이 국민의 이익에 상처를 주는 사태를 미리 막아야 하며, 교과서적으로 입법부와 정부의 견제와 균형 이론만 일방적으로 강조하다 보면  정치교체나 시대교체를 실천하기 위한 대통령의 리더십이 실종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아무튼 공허한 권력분립의 논쟁 보다 국민의 상식(이성적으로 논의된 여론)과 전문가의 지식을 어떻게 결합시키느냐를 한국현대정치의 실질적인 과제로 삼고 이를 위한 제도적 보완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우선, 당과 정부의 인사에서는 정책에 대한 충성도가 기준이 돼야하며 이것도 제도적 장치의 보완이 급선무라고 하겠다. 청와대의 대통령 보좌기능이 효율적인 체제로 강화돼 대통령의 정책의지가 방해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관료층에 대한 통제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전략적 정비도 필요할 것이다. 대통령은 주요 부처 실무국장급 핵심요직의 정책 입안·작성과 실행능력을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내무부의 새마을 담당이나 재무부의 이재국장등 국가 주요정책의 실무 리더들을 직접 불러 토론하고 지시하고 또 확인했다. 이러한 통치행위는 지금도 유효하다.

대통령 리더십이 막힌데 없이 발휘 되도록 인사권은 사양하지 말고 활용해야 한다. 사실, 국민은 정당(하드웨어) 지지 보다  ‘박근혜’(소프트웨어)를 선택했다고 본다.
 
새누리당이 ‘빨간 옷’을 입었지만, 시대교체를 견인 할 국민의 정당이 되기에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정권정당의 교체를 뛰어 넘는, 정치의 질적인 교체와 한 시대의 전환을 꾀하기 위해서라면, 여당은 박근혜정부를 성공한 정권으로 만들기 위해 기득권을 버리고 정치쇄신  정책을 급속도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여당은 박근혜리더십의 추진동력이지 방관자가 아니다. 그리고 박 당선자가 행정경험이 없다는 사실은 우려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유능한 전무가 들의 적극적인 보필이 필요한 부분이다. 우리가 민주정치를 하는 최종목표는 비상시의 불안을 평상시의 안정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누가 우리가 바라는 그곳으로 우리를 안내할 것인지 하는 이 문제는 보수냐, 진보냐 하는 이데올로기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지적이 꽤나 설득적이다.

우리들 공동체 전체의 생활을 어떻게 지키고 안정시킬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더 많은 자유를 확보할 것인가가 핵심인 것이다. 이제 국민에게 물어 본 그 길이 어느 길인지는 12월 19일 눈앞에 나타났고, 이미 국민은 그 길로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가난 밖에 없는 시골에서 태어난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의 자서에서 밝혔듯이 “소박, 근면, 정직, 성실한 서민사회가 기초가 되는” 근대국가를 이루는 것에 모든 것을 걸었다.

18년 장기집권기간,  그가 선택한 대기업 중심의 개발전략은, 자원이 없는 한국으로서, 근대화 추구방법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별 도리 없이 적응하기위한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오늘날 경제민주화의 쟁점이 된, 재벌집단의 지나친 탐욕을 제어하는 일은 그 다음의 문제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산업화 시대의 ‘박정희리더십’은 이데올로기나 그 무엇도 아니었으며 한국이라는 나라,  ‘우리’라는 공동체(국가)의 유지와 안전이라는 너무나 실재적인 일이였다. 그가 이루고 싶었던 ‘정직하고 소박한 서민사회가 기초가 되는 복지 공동체 건설’이라는 남겨 둔 숙제 앞에, 그의 큰 딸인 ‘박근혜’가 차기대통령으로서 국민의 부름을 받았다.

박 당선자는 첫 행보로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을 찾아 갔다. 미래시대는 ‘박정희’를 뛰어넘을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음을 그는 충분히 인식한 것이다. 그는 또 “원측이 바로 서는 자본주의”를 말한다. 적절한 규제마저 거부하는 자유방임적 시장원리주의의 문제를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박근혜 당선자는 앞으로 5년 동안,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행한 정치의 청산자로서, 또 한편으로는 조국 근대화 건설 정치의 계승자로서, 때로는 고뇌 속에, 때로는 환희 속에 영광스럽기도 하고 고독하기도 한, 그 길을 걷게 된다. 그러나 그 길은 ‘박근혜’의 길이 아니고 우리 국민이 선택한 길이다. 우리도, 한 사람도 뒤처지지 말고 함께 가야 할 길이다. 박근혜정부가 서민의 애환을 가장 잘 이해하는 따뜻한 정부로, 한국인의 역사에 기록되는 것은 국민과의 엄숙한 계약이다. choosungchoon@hanmail.net
 
*필자/추성춘. 전 MBC 앵커. (사)생활정치아카데미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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