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군수 김성기 세계 3대 재즈축제의 하나인 가평군자라섬국제재즈패스티벌이 끝난 후 10월 14일 숨돌릴 겨를도 없이 나는 텍사스 휴스턴행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이번 휴스턴 방문은 65년 전 6․25전쟁 기간에 가이사 중․고등학교를 건설해주었던 미 보병40사단재향군인회(회장 브렌트 제트)의 초청 때문이었다. 6․25전쟁 시 연천, 철원, 김화지구 전투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미 보병 40사단은 가평에서는 예비대로 주둔하며 대민업무에 치중하며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1952년 포성이 울리고 연기가 자욱한 전장 터에서 천막을 치고 열심히 공부하는 150여명의 가평 어린학생들을 목격한 사단장은 부대에 들어가 이 광경을 전하고 모금운동을 전개하였다. 1만5천명의 장병들이 2달러씩 모금하여 학교를 짓고 그 이름은 40사단 한국전 참전 최초의 전사자인 카이저하사의 이름을 따 가이사고등학교로 명명했다.(후에 가평고로 바뀜). 그리고 지금까지 가평고등학교에 매년 장학금을 지급해오고 있다. 2015년 10월 14일부터 17일까지 텍사스 휴스턴 나사(NASA) 힐튼호텔에서는 2015년도 미 제40사단 한국전참전재향군인회 리 유니온 행사가 개최되고 있었다. 그 행사에 나는 가평군수로서 초청받아 참석하였다. 6.25전쟁 당시 전사한 동료에 대한 추모와 진혼곡 그리고 NASA(미 항공우주국)방문, 미공군의 전투기 및 전폭기 시범비행 등 참전용사들과 숙식을 같이하며 모든 일정을 함께하였다. 그리고 리 유니온 행사 마지막 날 미 40사단 재향군인회는 가평군 대표단을 위한 행사를 해주었다. 나는 40사단으로부터 가장 혜택을 입은 자치단체의 장으로서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들이 건설해준 가평고등학교에서 수업했기에 40사단 한국전참전용사들에게 크게 빚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차례가 되어 나는 단상으로 나가 300여명의 한국전참전용사와 가족 앞에 6만3천여 가평군민을 대표해서 40사단 한국전 참전용사들에게 지금까지 가평에 베풀어준 헌신과 희생에 대해 정중하게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그다음 한국전 참전용사를 대표해서 단상에 오른 스콧 죤슨 전 40사단장은 모든 가평군민을 포함한 한국민에게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드린다고 축사를 하였다. 그러면서 나사(NASA 미 항공우주국)에서 띄운 위성에서 보내온 한반도 위성사진을 보면 서울의 밤은 밝은데 평양의 밤거리는 칠흑같이 어둡다며 그것이 단적으로 6.25전쟁이 끝나고 65년이 지난 지금 경제발전의 격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고 역설하였다. 그러면서 한국은 세계7위의 수출국으로 성장하였는데 북한은 아직도 최빈국을 면치 못하고 있다면서 자신도 한국산 핸드폰을 사용한다며 주머니에서 갤럭시를 꺼내 보여주었다. 나는 행사가 끝나고 가평에 주둔하며 가평고등학교를 건설하였던 참전용사들 한 분 한분 손을 잡아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노구의 참전용사들은 이렇게 먼 길을 달려와서 자신들을 반겨주어 고맙다고 연신 우리말로 ‘감사합니다’를 반복했다. 6․25전쟁당시 19세, 20세의 철부지 청년들이었던 그들은 이제 거동에도 어려움을 겪는 평균 85세 벽안의 노병들로 변했다. 전쟁의 참혹함을 겪었으나 고국에 돌아와서는 크게 격려 받지 못하고, 국민들로부터의 무관심과 냉대 속에 잊혀 가던 중 늦었지만 이제 와서 한국국민들이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드리자 그것에 고마워하였다. 이런 것 보다 그들을 더욱 더 감동시킨 것은 그들이 싸우고 도운 나라가 공산화되지 않고 눈부시게 발전하여 세계 상위권의 경제강국이 된 것에 대해 그들의 희생과 헌신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한국국민에게 감사하는 것이었다. 수정같이 투명한 벽안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고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 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누가 누구에게 감사해야하는가 ?
이 기사 좋아요
<저작권자 ⓒ 브레이크뉴스 경기북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