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수준까지 이르자 정부와 새누리당이 내놓은 대책에 대해 비난 목소리가 올라가고 있다. ‘학재개편’을 통해 출산율을 늘릴 수 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현행 12년의 초·증등 교육기간을 10년으로 줄여 사회진출 기간을 2년 앞당긴다면 혼인과 출산이 늘지 않겠냐는 논리다. 또한 최근 보편적인 사회현상으로 자리잡은 ‘만혼’현상에 대해서도 정부가 직접나서 ‘단체맞선’을 시켜줌으로서 혼인율을 높이겠다는 방안까지 발표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청년 대책’은 마련하지 않고 ‘학재개편’이나 ‘단체맞선’등 주먹구구식 대책만 발표함으로서 “국민을 가축으로 보는가?” 등의 비난이 폭발한 상태다.
[주간현대=김범준 기자] 지난 10월21일, 새누리당과 정부가 국회에서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관련 당정협의회를 열었다. 새누리당 측에서는 원유철 원내대표와 김정훈 정책위의장이 참석했고, 정부 측에서는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가 참석했다.
학제개편으로 저출산 극복? 이 자리에서 저출산의 근본적인 대책으로 언급된 것은 학제 개편이었다. 새누리당 김정훈 정책위의장은 “기존 틀에 갇혀 있으면 더 이상 저출산 고령사회 문제 극복이 어렵다”며, “필요하다면 처음부터 제도를 다시 설계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면서 학제 개편의 뜻을 밝혔다. 당정의 주장은 간단했다. 저출산을 심화시키는 이유는 결혼 연령이 늦어지는 것과 관계가 있다. 실제로 25세 미만에 결혼한 여성들은 평균 2.03명의 아이를 낳지만, 35세 이상에 결혼한 여성들은 평균 0.84명의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결혼 연령이 늦어지는 데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당정은 주된 이유로 청년들의 늦어지는 사회생활 시작을 꼽았다. 결국 청년들의 늦은 사회진출이 늦은 결혼으로 이어지고, 저출산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당정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제 개편’이라는 상당히 거대한 담론을 꺼내 들었다. 현재 우리나라 학제는 모두 알다시피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 학제를 개편해 초등학교를 5년제로 바꾸고, 중·고등학교 6년제를 5년제로 바꾸겠다는 것이 당정의 의견이다. 현재 12년의 초중등 과정을 10년으로 단축하겠다는 것이다. 당정은 대학에 대해서도 손을 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소모적인 스펙 쌓기를 방지하기 위해 대학 전공 구조를 조정하겠다고 밝혔고, 현행 4학년인 대학교 제도 역시 구조조정을 통해 전공별로 3년제·4년제로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 교육체계를 송두리째 흔들고 3∼5세 누리과정까지 손봐야 하는 일이어서 당장 실행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과거 노무현·이명박 정부도 이를 검토했으나 힘 있게 추진하지 못했다. 당정협의에서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앞당기자는 말을 꺼낸 사람은 새누리당 김정훈 정책위의장이다. 김정훈 정책위의장은 “지난 10년간 무상보육, 육아휴직, 육아기 탄력근무제 등 일·가정 양립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지만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다”며 “발상의 전환을 통해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학제개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 등 정부 측 참석자들에게 구두로 이를 제안했다고 한다. 학제에 관한 주무 부처인 교육부 관계자는 자리에 없었다. 김 의장의 제안에는 인구 논리뿐 아니라 재정 논리가 숨어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는 나이가 낮아지면 경제활동인구가 많아진다. 정부로서는 인구 감소와 함께 점점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세수 확보에 도움이 된다. 현재 3∼5세 누리과정 무상보육에 들어가는 예산도 상당 부분 절감할 수 있게 된다. 취업 시 국민연금에 자동 가입되므로 연금재정 고갈을 늦추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이런 재정효과 때문에 기획재정부는 오래전부터 입학 연령을 낮추는 데 적극적인 입장이었다. 기재부는 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관련 실무 논의에서도 이를 주장했다고 한다. 정부 관계자는 “논의가 이뤄졌으나 전문가 사이에 이견이 있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지난해 말 2015년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는 입직 시기를 6개월 앞당기는 효과가 있는 ‘가을학기제’를 제안했다. 아직 별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혼란만 키우는 대책 실제로 이를 지켜보는 학부모들의 시선도 좋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일부 미취학 아동 학부모들 가운데서는 아직 어린 아이들을 일찍부터 경쟁으로 몰아부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상당수 학부모들은 자녀의 취학유예를 고려하는 학부모들이 해마다 적잖은 상황에서 외려 입학 시기를 앞당기겠다는 새누리당의 안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실제 만 5세 아동의 조기취학은 줄어드는 추세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지난 2009년 이후 5년 간 초등학교 취학 유예자수는 전국적으로 6만152명이었다. 이는 법적취학 연령보다 한 해 일찍 입학시키는 조기입학자 2만9114명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숫자다. 또래보다 발달이 늦다거나, 홈스쿨링을 시키기 위해서 등 이유도 다양하다. 무한경쟁에서 뒤쳐지지 않도록 해외 연수 등을 보내려고 자녀의 취학을 유예하는 학부모도 있다. 일각에서는 청년 일자리가 확대 되지 않은 상황에서 고등학교 졸업연령이 최대 3살정도 낮아질 경우 자칫 10대 청년실업자만 양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는데, 학교를 일찍 졸업시킬 경우 구직자만 늘어나게 돼 결국 취업 경쟁만 높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서울지역의 교육인은 “청년 일자리를 늘려 고용을 확대할 생각은 않고 학제 감축 등 탁상 행정으로 철도 들지 않은 아이들을 취업전선으로 내모는 꼴이 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교육인들도 반대하고 있다. 입학 연령을 낮추는 것이 아동의 발달 단계를 고려할 때 좋지 않고 다른 나라의 학제와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대학의 유아교육과 교수는 “학교에 일찍 들어가면 사교육비가 오히려 더 들고 교육적으로도 도움이 안 된다”면서 “공부 잘하는 핀란드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는 오히려 우리보다 한 살 늦게 입학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비용을 제기하는 학자도 존재한다. 교육계의 한 전문가는 “학제개편논의는 이미 십수년 전부터 다뤄왔던 논의지만,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들어 접은 정책”이라며, “가장 대표적인 문제가 취학연령이 단축되는 시기의 아이들과 직전 세대의 아이들이 동시에 취업 시장에 뛰어들며 경쟁이 심화될 수 있는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유치원이 공교육화 되며 과거와 달리 취학연령 단축을 시행한다 하더라도 사교육비 경감에 효과가 없다”며 취학연령 단축이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육부는 이에 대해 “당정회의 중 당에서 먼저 나온 얘기”라며 아직은 막 협의를 시작하는 단계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또 다른 교육부 관계자는 “과거 정권에서 봐 왔듯 학제개편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고 말해, 이번에도 학제개편이 논의만 반복되다 흐지부지 끝날 수도 있음을 암시했다. 실제 ‘취학연령 단축’은 지난 노무현, 이명박 정부에서도 저출산 문제 해법으로 한 번 씩 거론돼 왔던 안이지만, 번번이 무산된 바 있다. 노무현 정부는 지난 2007년 ‘비전 2030’에서 ‘만 5세 초등학교 취학 방안’ 또는 ‘초등학교 유아학년제(K학년) 도입’을 검토했지만 학계의 반발로 중단했다. 이명박정부에서는 미래기획위원회가 2009년 취학 연령을 1년 앞당기는 학제개편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여론이 좋지 않아 실무 부처 차원에서는 논의되지 않았다. 정부는 이후 3∼5세 무상보육 체계인 누리과정을 도입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미래기획위원장을 지낸 곽승준 고려대 교수는 “미국은 프리스쿨이 있어 우리보다 1년 반 먼저 입학한다”면서 “50년 전에 비해 아이들의 발육이 엄청 좋아졌고, 학교는 안전하게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그는 “지자체의 무상보육 예산 절감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큰 이익”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측은 “지난 2006년 참여정부 때도 입학 연령을 앞당기는 방안이 논의됐지만 현실화되진 않았다”며 “대단히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교육부는 매우 신중히 접근하겠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원론적 측면에서 가능한 제안이지만 여러 연구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면서 “아직 구체적 절차를 논할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작 이날 당정협의에 교육부 측은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저출산 고령화 대책의 주무부처가 복지부이기 때문. 하지만 여당 인사들이 요구한 학제 개편이나 대학 구조조정은 모두 교육부 주관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입학 연령을 낮추면 특정 연도에 나이가 다른 학생들이 함께 공부하는 등 혼선이 발생한다”며 “소요 예산도 적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나타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초중고 12학년제를 적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나라만 이를 바꿀 경우 정책 연구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또다른 교육부 관계자는 “일찍 졸업한다고 해서 일찍 취업한다는 보장도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2015년 경제정책 방향’에서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9월에 1학기를 시작하는 ‘가을학기제 도입’을 공론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지만, 후속 추진 상황은 전무한 상태다. 인간이기를 포기하라? 정부가 저출산을 극복하기위해 제안한 것은 학재개편만이 아니다. 이색 대책으로 나라에서 단체 맞선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광역자치단체와 복지부 소관 ‘인구보건복지협회’가 힘을 합쳐 결혼을 하지 못한 남녀를 위한 ‘단체 맞선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정부가 지난 10월18일 내 놓은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안은 사회 전반적으로 만연한 비혼·만혼 경향을 저출산의 근본 원인으로 보고 ‘결혼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기 위한 대책 제시에 집중했다. 우선 국가가 나서서 미혼 남녀를 위한 만남의 장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만사결통(만사는 결혼에서 통한다)’이라는 단체 맞선 프로그램을 마련해 총각, 처녀 사이 만남의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미혼 남녀의 단체 맞선을 주관한 적은 몇 차례 있었으나 이번처럼 대통령 산하 직속 기구와 같은 국가 기관에서 공식적 계획을 밝힌 건 처음이다. 정부는 지역 내 공공기관과 기업체 등의 참여를 유도해 단체 맞선을 주선할 계획이다. 미팅 프로그램은 남녀가 함께 자원봉사를 하거나 여가·문화 참여를 통해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도록 구성할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이번 기본계획이 확정되면 관련 예산을 확보한 뒤 당장 내년부터 이 프로그램을 시행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고비용 혼례문화가 청년층의 결혼 기피 현상으로 이어진다고 판단해 ‘작은 결혼식’에 대한 홍보도 강화하기로 했다. 이같이 출산율을 늘리기 위한 국가주도의 ‘학재개편’과 ‘단체맞선’ 등은 일부 세력에게는 호평을 받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에게는 비판받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직접적인 ‘적용 세대’인 10~20 청소년 및 청년층은 반발이 크다. 당정이 제기한 ‘청년들의 사회 진출이 늦다’와 ‘이는 저출산으로 이어진다’는 분석은 대체로 동의 하지만 해법들이 도저히 납득가지 않는 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제까지 ‘N포세대’라는 청년들의 ‘포기’를 막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도입했다. 하지만 오히려 청년들을 절망시키는 정책이었다. 대표적으로 비정규직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했고, 정규직의 지위를 낮춘 ‘중규직’을 만들겠다고 이야기했다. 해고를 쉽게 만들었으며 박근혜 대통령은 청년들에게 “나라가 텅텅 빌 중동으로 가라”고 말했다. 낭떨어지로 몰린 청년들에게 근본적인 해법은 없었다. 결국 청년들을 ‘포기의 낭떠러지’로 밀어왔던 정부가 내놓은 해법은 학제를 축소하겠다는 말이었다. 학교에 다니는 기간을 2년 줄이면 사회에 2년 더 빨리 나갈 수 있고, 그러면 출산율도 올라가지 않겠느냐는 분석이었다. 문제는 청년들이 2년 일찍 취업시장에 뛰어들면 취업시장이 안정되지 않을 것이라는데 있다. 이에대해 한 경제전문가는 “이번 당정의 제안은 실로 어처구니가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라며 “과연 취업시장에 먼저 들어가면 취업이 더 쉬워질까? 2년 일찍 취업시장에 들어간 청년들은 2년 일찍 취직하고 2년 일찍 결혼할까? 그리고 아이를 낳을까?”라고 반문했다. 이어 “2년 일찍 직장을 잡는다고 해도 청년 일자리의 대부분은 여전히 비정규직일 것이다. 청년들은 여전히 불안할 것이고 그러므로 불행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청년 문제의 핵심은 취업하는 시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얼마나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느냐에 있다. 삶이 안정되지 않고 매일 생존의 위기에 직면하는 시대에는 누구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려 하지 않는다. 청년층에게 희망을 달라 이같은 청년문제에 대해 한 전문가는 “저출산 원인이 만혼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청년들이 더 빨리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 주면 된다” “그건 단순히 청년들이 취업 전선에 일찍 뛰어든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불필요한 스펙 경쟁 없이 능력과 열정에 따라 일자리를 잡을 수 있게 해 주고, 일자리를 잡을 수 없는 동안에는 국가가 최소한의 생활은 보장해 주고, 일자리를 잡은 다음에는 고용을 안정되게 만들어서 해고불안이 일상이 되지 않게 해 주고, 해고가 유연하면 그만큼 고용도 유연하게 만들어 주고, 중요한 것은 살 만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kimstory2@naver.com 원본 기사 보기:주간현대
이 기사 좋아요
<저작권자 ⓒ 브레이크뉴스 경기북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