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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 국가정보원 ‘자살 잔혹사’

허술한 요원 관리…“답 없는 국가걱정원”

김범준 기자 | 기사입력 2015/07/27 [10:14]

집중분석 국가정보원 ‘자살 잔혹사’

허술한 요원 관리…“답 없는 국가걱정원”

김범준 기자 | 입력 : 2015/07/27 [10:14]
박근혜 정권 들어 조용한 날 없어진 국가정보원
민주주의 훼손 앞장…‘대선 개입’에 ‘간첩 조작’
사고만 터지만 자살…‘축소·은폐’라는 불신 키워
특유의 폐쇄적인 운영…조직관리도 문제 드러나



박근혜 정부 들어 어느 기관보다 은밀하게 움직여야 하는 국내 최대의 정보기관, ‘국가정보원’이 이슈의 중심이 됐다. 매해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터트려 주면서 정보기관의 위신은 바닥을 기는 상태까지 와버린 것이다. 특히, 문제가 드러날 때마다 납득할 만한 해명이 없음은 물론이고 제대로 수습조차 못하는 모습을 보이며, 심지어는 해당 요원들의 자살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로 ‘국가걱정원’으로 불리며 오히려 국가안보에 짐이 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져간다.<편집자주>




[주간현대=김범준 기자] 국가정보원이 이탈리아 해킹업체 ‘해킹팀’에서 소프트웨어를 구입해 민간인을 사찰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국정원의 활동이 문제가 돼 도마 위에 오른 건 박근혜 정부 들어서만 3번째고, 이 과정에서 국정원 직원 2명이 자살을 시도해 한 명이 숨졌다.

대선 개입 사건

이뿐만이 아니라 박근혜 정권 들어 국정원은 매해 논란의 중심에 서고 있다. 국정원은 현 정부 들어서만 2차례 검찰 수사 대상이 됐고 압수수색도 받았다. 2013년 원세훈 전 원장의 ‘대선 개입’ 사건, 2014년 ‘간첩 증거조작’ 사건 등은 모두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왔다. 2015년 현재는 해킹 프로그램을 사용해 민간인을 사찰한 의혹에 휩싸였다. 국가 기밀을 다루는 정보기관이 박근혜 정부 들어 1년에 한 번꼴로 여론의 ‘관심사’가 된 셈이다.

지난 2013년 4월29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검찰에 출석했다.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에게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선거·정치 개입 관련 글을 올리게 한 혐의를 받았다. 국정원장 퇴임 뒤 불과 두 달도 안 된 시점이다. 원 전 원장이 2012년 대선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박근혜 정부는 정통성에 치명상을 입을 터였다.

국정원의 ‘선거·정치 개입’ 사건은 ‘공안’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검찰은 ‘특수통’ 검사인 윤석열 당시 여주지청장을 팀장으로 하는 특별수사팀을 구성하면서 강한 수사 의지를 보였다. 수사팀은 공안·특수·첨단범죄 분야의 검사들이 함께 포함됐다.
이는 공안 검사가 중심이 된 수사팀에 사건을 맡기면 수사 의지나 결과에 불신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풀이됐다. 평소 국정원과 검찰 공안부는 대공분야 수사 등을 두고 협조하는 경우가 많다. 수사팀 구성은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이 지시했다.

원세훈 전 원장이 1차 조사를 마치고 귀가할 무렵, 검찰은 법원으로부터 국정원의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다. 4월30일 검사와 수사관 25명은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정원에 영장을 들고 들어갔다. 2005년 ‘안기부 X파일’ 이후 8년 만이다. 압수수색은 13시간 30분 동안 이어졌다. 6월에는 기소 시점을 앞두고 검찰과 법무부의 갈등이 불거졌다. 검찰은 원세훈 전 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법무부는 그러나 이를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법무부 장관은 황교안 국무총리다. 검찰은 결국 원세훈 전 원장에게 공직선거법 및 국정원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대신 불구속 기소했다. 원 전 원장이 댓글 작업으로 대선에 영향을 끼치는 행위를 했다는 결론이다.

원활히 진행되던 수사는 갑작스런 벽에 막히게 된다. 2013년 9월 <조선일보>는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의 ‘혼외자’ 의혹을 보도했다. 법무부 장관이었던 황교안 국무총리는 유례없는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했다. 당시 법무부 대변인이 직접 서울 고등검찰청 기자실로 와 브리핑까지 했다. 채 총장은 의혹 제기 1주일 뒤 자진사퇴했다. 정권의 수뇌부가 자신들의 의중을 거스른 채 총장을 ‘찍어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13년 10월 윤석열 특별수사팀장은 윗선에 보고 없이 국정원 직원들의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이들을 체포했다. 검찰은 ‘항명’이라며 윤석열 팀장을 수사팀에서 배제했다. 얼마 뒤 윤석열 전 팀장은 국정감사에서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이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고 폭로했다. 윤 팀장은 “조 지검장이 ‘야당 도와줄 일 있느냐’고 했다”고 말했다. 조 지검장은 이를 부인했다.

간첩 증거 조작

37차례의 공판 끝에 2014년 9월 1심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의 댓글 등의 활동 지시를 두고 “정치 관여는 맞지만, 선거개입은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지난 2월 항소심 재판부는 국정원법·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유죄를 선고했다. 최근 대법원은 검찰이 제출한 자료의 증거능력을 다시 판단해야 한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지난해 초에는 수사기관의 ‘간첩사건 증거조작’이라는 초유의 사건이 불거졌다. 유우성(35)씨는 2013년 1월20일 간첩 혐의 등으로 국정원에 체포됐다. 이후 사건을 송치받은 검찰은 유씨를 기소했다. 그러나 1심은 유씨의 간첩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한 검찰은 유씨의 간첩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국정원으로부터 중국 공문서 등 3개를 받아 재판부에 제출했다. 2006년 5월 말에서 6월 초까지 북한에 머물렀다는 내용의 중국 허룽시 공안국 명의의 ‘출입경기록’, 이 출입경기록을 발급한 사실이 맞다는 ‘사실확인서’, 변호인 측이 제출한 문서의 내용이 거짓이라는 ‘싼허변방검사참(출입국사무소)의 답변서’ 등이다. 그러나 중국 대사관은 3개 문서가 모두 위조됐다고 했다.

증거조작 의혹이 제기되자 검찰은 2월18일 진상조사팀을 꾸리고 조사에 착수했다. 탈북자 출신의 중국 국적자인 국정원 협조자 김모(61)씨가 등장하면서 조사에 속도가 붙었다. 김씨는 검찰 조사에서 자신이 국정원 대공수사국 김모(48) 과장에게 위조된 ‘싼허변방검사참의 답변서’를 전달했고, 국정원도 위조 사실을 알고 있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3차례 검찰 조사를 받은 뒤 자살을 기도했다. 그는 유서에서 국정원을 ‘국조원(국가조작원)’이라고 표현했다. “국정원으로부터 가짜 서류제작비 명목으로 받을 돈이 있다”는 내용도 유서에 담겨 있었다. 3월7일 검찰은 조사를 공식 수사로 전환했다. 검찰은 사상 세 번째로 국정원을 압수수색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대선 개입’ 사건 이후 10개월 만이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만 두 번째다. 검찰은 김씨로부터 위조 문서를 받은 국정원 김 과장을 구속하면서 검찰 수사는 국정원 내부의 ‘윗선’으로 향했다.

그러나 3월22일 김 과장과 함께 증거조작을 공모한 혐의를 받고 있던 국정원 권모 과장(51)이 검찰 수사에 불만을 품고 자살을 시도했다. 권 과장은 경기 하남의 한 중학교 앞에 주차된 승용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운 흔적과 함께 의식을 잃은 채로 발견됐다. 대공 수사 분야 베테랑으로 알려진 권 과장은 유우성씨 간첩 사건의 문서 입수 및 위조 과정에 개입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김 과장과 권 과장이 중국 주재 선양 총영사관에 파견된 이인철(48) 영사에게 ‘싼허변방검사참의 답변서’가 진본이라는 허위 영사확인서를 작성하도록 한 사실을 파악했다. 검찰은 문서 입수를 위한 자금 집행의 결재 내역을 확인한 결과 대공수사국 팀장인 이모(54) 처장도 위조에 개입한 사실을 파악했다.

검찰은 이 처장을 수차례 걸쳐 소환조사했으나 그는 문서위조 사실을 몰랐고, 입수 경위에 대해 ‘대공수사부국장-국장-서천호 2차장-남재준 원장’ 등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대공수사부국장까지만 소환조사했고, 상부의 혐의는 밝혀내지 못했다. 유우성씨의 간첩 혐의 재판에서 검찰은 조작된 증거 3건을 철회했고, 유씨는 2심에서도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자살 시도 만연

문제는 국정원은 정치적으로 또는 법적인 책임을 추궁당해 궁지에 몰릴 때마다 직원이 자살하거나 자살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정원 직원들의 자살 사건은 드물지 않게 발생했다. 국정원은 ‘치부’가 드러날 때마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사례가 대표적이다. 국정원은 지난 대선 직전인 2012년 12월 초 이탈리아의 해킹 프로그램 제작업체 ‘해킹팀’에 다수의 기기를 해킹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긴급하게 주문했다. 국정원이 서울대 공대 출신의 잠수함 전문가에게 악성코드가 포함된 이메일을 보내 해킹을 시도한 정황도 나왔다. 이병호 국정원장은 지난 7월14일 국회 정보위에 출석해 이탈리아 업체로부터 해킹 프로그램 ‘리모트컨트롤시스템(RCS)’을 구입한 사실을 시인했다. 그러나 북한의 해킹을 대비하기 위한 연구용이며 민간인을 상대로 활용한 적은 없다고 했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는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제기하며 수사 필요성을 주장한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국정원의 해킹 프로그램 구입에 따른 스마트폰과 컴퓨터 불법 도·감청 의혹에 대해 수사에 착수할 필요성이 있는지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정원은 논란을 수그러뜨리려 국회 정보위원들에게 프로그램 사용 기록을 공개하겠다고 했다.

결국 지난 7월18일 해킹 관련 업무를 담당한 것으로 알려진 국정원 직원 임모(45)씨가 승용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차량에선 번개탄을 피운 흔적이 나왔다. 그는 유서에서 억울함을 토로했다. 결국 압박을 느껴 자살한 것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과거의 사례들도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해 3월 서울시 공무원 간첩증거조작 사건에 연루된 권 모 과장은 자살을 시도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국정원으로부터 하청을 받고 증거조작에 관여한 조력자(협력자)가 자살을 시도하자 권 과장도 뒤를 따랐다. 그 이후 증거조작사건은 흐지부지 마무리됐다. 대공 수사국장 등 상부의 책임은 면책됐다.

이런 연유로 국정원 직원들의 자살이나 자살시도가 안타깝게도 ‘꼬리 자르기’ ‘사건의 축소.은폐’라는 불신을 키워왔다. 지난해 3월22일 낮 1시 33분쯤 경기도 하남시 하남대로 모 중학교 앞에 주차된 싼타페 승용차 안에서 국정원 소속 주선양 부총영사 권모 과장이 의식을 잃고 쓰러진 채 발견됐다. 권 과장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피고인 유우성씨의 간첩 혐의를 뒷받침하는 위조문서를 입수하는 과정에 개입했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 중이었다. 탈북자 출신인 유씨가 서울시 공무원으로 재직하면서 간첩활동을 했다는 소식은 정권 차원에서 전 국민적 안보의식을 고취하는 데 대대적으로 활용됐는데, 이후 결정적 증거가 위조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정원은 위기에 몰렸다.

당시 국정원은 유씨가 북한에서 활동한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허룽시공안국 명의의 유씨 출입국 기록’, ‘출입국 기록이 진짜라는 허룽시공안국의 사실확인서’, ‘싼허변방검문소의 상황설명 답변서’ 등을 검찰에 제출했다.

하지만 중국 대사관이 3가지 문건 모두 위조라고 밝히면서 국정원은 궁지에 몰렸고 위조증거 확보에 가담했던 권 과장은 “검찰이 수사를 이상한 방향으로 끌고 간다”며 자살을 기도했다. 이후 국정원은 “권 과장이 의식을 회복했지만 기억 상실 증세를 보인다”고 밝혔고, 간첩조작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는 국정원 대공수사국장과 차장, 국정원장 개입 부분까지 나아가지 못한 채 실무자들만 처벌하면서 종결됐다.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수사가 더 진전되지 못한 사례는 또 있다. 김영삼 정부에서 국가안전기획부장(국정원 전신)을 지낸 권영해씨는 1997년 대선 국면에서 김대중 후보 당선을 저지하기 위한 일명 ‘북풍 공작’을 주도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1998년 3월 서울지검 특별조사실에서 조사를 받던 권씨는 성경책에 숨겼던 칼날로 할복자살을 기도해, 검찰 수사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지난 2005년 ‘삼성X파일’ 사건이 폭로되면서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안기부 비밀 도청 담당인 ‘미림팀’ 사건 때도 자살 시도가 발생했다. 당시 미림팀장이었던 공운영씨도 같은 해 7월 검찰 수사를 받던 도중 자신의 아파트에서 흉기로 복부를 찔러 자살을 기도했다. 공씨는 딸을 통해 “나라의 안정을 위해 비밀을 주검까지 갖고 가겠다”고 밝혔다.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 2차장을 지낸 이수일 전 호남대 총장도 ‘국정원 불법 도청’사건과 관련해 3차례 검찰 수사를 받은 후 자택에서 목을 매 숨졌다. 결국 일반 형사사건과 달리 국정원은 자신들에 대한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거나 정치적 위기에 몰릴 때마다 최고 수뇌부부터 차장, 과장급 직원이 결백과 안보 중요성을 강조하며 자살을 시도했다.

그때마다 수사가 중단되거나 진상은 묻혀 버렸다. 국정원 해킹 프로그램 구매 사건도 수사 착수가 이뤄지기도 전에 ‘핵심 직원의 자살’이라는 돌발적 변수를 맞았다. 이번 사건만은 전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국민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2004년 12월에는 개인 신상 문제로 감찰조사를 받던 국정원 직원 김모씨가 청사 안에서 목을 매 숨졌다. 이 직원은 3차장 산하의 8국에서 근무했으며 개인적인 신상문제 때문에 감찰실로부터 조사를 받아오다 심적인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은 조사 과정에서 강압적인 행위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스캔들에 휘말려 자살한 직원도 있다. 1986년 국정원 직원으로 채용된 A씨는 1994년부터 1999년까지 간부 B씨와 수시로 사적으로 만났고 2001년부터는 또 다른 간부 C씨와 친밀하게 지냈다. 다른 상사와도 각별한 친분을 유지했다고 한다. 국정원은 이를 조사해 A씨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던 2명에게 정직 1개월과 감봉 2개월의 징계처분을 내렸는데 감찰 조사를 받던 A씨의 상사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사무실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자살 방조 국정원

이처럼 국정원의 각종 실정들이 드러날 때마다 직원들의 ‘자살기도’라는 불행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국정원 책임자들은 ‘보안’을 이유로 매번 뒤에서 숨어 나타나지 않는 상태다. 한 정치평론가는 “국정원 직원의 자살은 사태의 심각성을 대변해 주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특유의 조직문화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라면서 “무엇보다 국정원 자체에서 조직관리가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자살 사건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kimstory2@hyundaenews.com

원본 기사 보기:주간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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