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살아있는 권력의 성역은 높았다. 친박근혜 계열 인사들이 대거 연루되며 ‘대선자금’ 의혹까지 불거졌던 검찰의 ‘성완종 리스트’ 수사가 사실상 맥없이 종료된 것이다. 리스트 인사 8명 중 6명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내리기로 하는 등 국민적 의혹을 다 해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야권을 중심으로 그동안 검찰의 수사 과정을 둘러싼 형평성 논란과 특검 요구 목소리도 한층 거세질 것으로 관측된다. <편집자주>
사실상 마무리된 수사…80일간 헛발질한 검찰 건들지 못한 대선자금…기계적 중립만 신경 써 갑작스런 수사 타깃 이인제·김한길…사정준비? 총체적 부실수사 드러나면서 기정사실 된 특검 [주간현대=김범준 기자] ‘성완종 리스트’ 의혹 수사가 마무리됐다. 지난 4월13일 수사팀을 꾸리고 수사에 착수한 지 81일 만이다. 검찰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검사장)은 지난 7월2일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리스트 8인 가운데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만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기고 나머지 친박 6인 모두 무혐의 처분하기로 했다.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씨가 받은 특별사면 의혹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판단하고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다.
80일간의 맹탕수사 이 사건은 해외자원개발 비리로 검찰 수사를 받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시작됐다. 억울함을 호소하던 그는 4월 9일 금품 제공 리스트가 적힌 작은 메모 한 장과 언론 인터뷰를 남기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의혹에 연루된 인물은 김기춘·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병기 현 청와대 비서실장, 홍준표 경남도지사, 이완구 당시 국무총리, 서병수 부산시장, 유정복 인천시장,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등이었다. 특히 성 전 회장이 인터뷰에서 2012년 새누리당 대선캠프에서 조직총괄본부장을 지낸 홍 의원에게 대선자금조로 2억원을 전달했다고 밝혀 사건은 불법 대선자금 의혹으로 비화했다. 살아있는 권력을 마주한 검찰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원칙에 따라 수사하겠다”는 일성과 함께 칼을 뽑았지만 가는 길은 험난했다. 공여자가 없는 가운데 성 전 회장의 핵심 측근들은 수사 초기 의혹 해소의 열쇠가 될 중요 물증을 빼돌려 검찰 수사를 방해했다. 정치적 외풍도 만만치 않았다. 검찰은 공여자를 대신할 주변인물의 진술과 물증을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사람’이 없다면 금품이 오간 ‘시점’과 ‘상황’을 치밀하게 복원해 의혹의 실체를 밝히겠다는 전략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이를 ‘수백만, 수천만 개의 퍼즐을 짜맞추는 작업’으로 묘사했다. 검찰의 첫 타깃은 홍 지사와 이 전 총리였다. 이 전 총리는 의혹이 구체화하자 국무총리 취임 두 달여 만인 4월27일 총리직에서 전격 사퇴했다. 리스트의 다른 인물과는 달리 두 사람은 성 전 회장의 메모지와 언론 인터뷰에 금품을 받은 시점과 액수가 비교적 소상하게 드러나 있었다. 특히 홍 지사의 경우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이라는 금품전달자의 진술이 있어 혐의 입증이 비교적 수월했다. 홍 지사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 경선에 나선 2011년 6월 성 전 회장으로부터 1억원을, 이 전 총리는 충남 부여·청양 재보선에 출마한 2013년 4월 3000만원을 각각 받은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나머지 리스트 6인의 수사는 사실상 서면질의서로 마무리됐다. 검찰은 이들에게 지난 5월29일 일제히 서면질의서를 보냈고 지난 6월 초 차례로 답변서를 받았다. 이로 인해 정권 실세에 면죄부를 주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론이 들끓었지만 수사팀 내에서는 현실론이 앞선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춘·허태열 전 실장은 공소시효가 만료됐고 메모지에 이름만 언급된 이병기 현 청와대 비서실장도 수사 단서 부족으로 소환이 어렵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었다. 대선캠프 3인 가운데 서 시장과 유 시장은 2차 서면조사를, 홍 의원에 대해서는 참고인 신분의 소환조사를 각각 진행했지만 특별한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수사 과정에서 김근식 전 새누리당 수석부대변인이 불법 대선자금 규명의 ‘징검다리’로 주목받았으나 결국 총선 자금 2억원 수수라는 개인비리로 마무리되면서 불법 대선자금 의혹은 실체가 없는 것으로 결론났다. 검찰 관계자는 “팀원 모두 밤을 새우며 수사했지만 시점·동선·돈의 흐름 등 3대 수사 요소 가운데 어느 하나가 빠져 있는 등 똑 떨어지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말기인 2007년 12월의 성 전 회장 특사 로비 의혹 수사도 미제로 남겨뒀다. 검찰은 법무부에서 특사 관련 자료를 넘겨받아 분석하는 한편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특사 업무를 전담한 박성수 전 법무비서관을 서면 및 소환조사하고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낸 새정치민주연합 전해철 의원과 이호철씨에게도 서면으로 사실 관계를 질의했다. 검찰은 그러나 당시 청와대 관계자가 성 전 회장 특사에 개입한 구체적인 정황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인 노건평씨가 당시 성 전 회장의 특사를 위해 청와대에 로비를 한 흔적을 포착했지만 경제적 이득이 제공된 시점과 맞아떨어지지 않아 사법처리 대상에서 제외했다. 불법 대선자금과 특사 로비 의혹을 들춰낼 결정적인 단서가 나오지 않으면서 힘을 잃어가던 검찰 수사는 막판에 리스트 밖 인물의 새로운 금품수수 정황이 포착되며 다시 활기를 띠는 듯했다. 검찰은 경남기업 관계자의 진술과 계좌추적 결과 등을 토대로 새누리당 이인제 의원과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의원이 성 전 회장으로부터 각각 2000만원, 3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잡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소환에 불응하며 버티기로 나서자 검찰은 리스트 의혹과 분리해 두 사람을 계속 수사하는 쪽으로 정리했다. 근처도 못 간 성역 이처럼 검찰은 81일간의 수사에서 사실상 의혹을 사실상 해소 못한 ‘맹탕 수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검찰의 수사 과정을 둘러싼 여야 간 형평성 논란으로 인해 특검 요구 목소리도 한층 거세질 것으로 관측된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은 애초부터 여권, 특히 친박세력에 불리한 수사였다. 성완종 리스트 8인중 홍준표 지사를 제외한 7인이 모두 친박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누구든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 실세들에게 불리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됐다. 아울러 야권이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결과는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수사 착수 당시 강한 의욕을 보였던 특별수사팀은 단서가 있으면 ‘리스트’ 밖에서도 수사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결과는 확장될 것 같았던 여권 수사는 오히려 줄어든 느낌이고, 불똥이 튀지 않을 것 같았던 야권과 새누리당 비주류에게는 예상보다 강한 수사가 이어졌다. 이같은 수사팀의 온도차 때문에 야권 인사와 여권 비주류 인사들의 반발이 거센 것이다. 검찰의 초기 의지는 강했다. 문무일 검사장은 수사팀이 차려진 지난 4월13일 “다른 것을 생각할 여지가 없다. 좌고우면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수사 대상과 범위를 한정 짓지 않고 있다. 제한 없이 자료를 검토 중이고, 수사 대상이 나오면 (메모지에 등장하지 않은 인물이라도) 수사 논리에 따라 진행하겠다”고도 했다. 홍준표 경남지사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측근으로부터 1억 원을 받은 의혹과 이완구 총리의 정치자금 3000만원 수수의혹을 파헤칠 때, 말 바꾸기 등 증거인명 행태가 보일 때 강한 어조로 비판하기도 했고, 외풍 차단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홍 지사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면서 이상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한다. 결국 불구속 기소로 가닥을 잡았고,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의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았던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이 소환되기까지 한동안 이렇다 할 수사성과를 보이지 않았다. “단계적으로 수사하겠다”는 수사팀의 말은 다른 수사대상자에게 검찰 소환에 대비한 시간을 벌어줬다는 오해를 낳았다. 김기춘-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병기 현 비서실장, 유정복 인천시장, 서병수 부산시장 등 리스트에 오른 5명에 대해서는 서면조사하겠다는 방침도 이 즈음에 흘러나왔다. 수사기류가 여권 쪽에서 급격히 약화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수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압수수색도 홍 지사, 이 전 총리 건을 제외하고는 한 달이 지난 뒤에야 이뤄졌다. 수사 막판 기류는 다시 달라진다. 야권과 여권 비주류에 대한 수사는 리스트 밖임에도 수사팀이 즐겨쓰던 서면조사도 없이 소환을 통보했다. 노건평씨가 특별사면 개입 의혹으로 전격 소환됐고, 특사와 무관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별건 조사를 받기도 했다. 결국 외형적으로는 여권 실세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흘러갈 줄 알았던 이번 수사 결과 ▲여권 주류 ▲여권 비주류 ▲야권 등 세 진영에서 골고루 2명씩 소환조사 대상에 올랐고, 리스트 속에 있는 인사, 리스트에 없는 인사, 각 3명씩 조사를 하는 것으로 ‘기계적 균형’을 맞추었다. 수사기법과 대상 범위, 속도 등에서도 수사팀이 초심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 것은 외풍이 작용했거나 검찰 수뇌부-수사팀 간 이견이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관측이 나온다. 수사 대상자별 온도차, 기류차는 검찰 수사가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는 핵심 요인이었다. 그러나 검찰이 이번 수사를 계기로 정치권 사정의 단초를 마련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러 가지 국내외 여건상 크게 한판 벌이기 어렵지만, 언젠가는 검찰의 ‘히든카드’가 회오리바람을 몰고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사정 드라이브 준비! 실제로 특별수사팀은 성완종 전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의혹을 받는 이인제 최고위원과 김한길 의원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하지 못했다. 이 최고위원은 지난 2012년 4월 총선을 앞두고 1000만원에 달하는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 의원은 당 대표로 일하던 2013년 경선 당시 지원금 명목으로 수천만 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수사팀은 이미 물증을 확보하는 등 상당 부분 조사를 벌였지만 아직 수사는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두 사람이 잇달아 소환에 불응하며 가장 중요한 당사자의 입장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것. 성과와는 별개로 리스트 속 인물들과 사면 비리 의혹을 받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건평씨에 대한 수사가 마무리된 것과 대조적이다. 특히 이 최고위원과 김 의원은 현직 의원 신분인데다 6월 임시국회가 진행 중인 만큼 수사팀은 강제 구인에 어려움을 겪었다. 김 의원은 이미 공개적으로 소환에 불응한다는 의사를 밝혔고, 이 최고위원은 출석하겠다는 약속을 한 차례 번복했다. 결론이 지체되는 만큼 수사팀은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으로 넘겨 수사를 계속할 예정이다. 사실상 단기간 내에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일단 숨을 고를 시간을 얻은 검찰은 체포영장을 청구하거나 출석 없이 조사를 마무리하는 방안을 두고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한두 차례 자진 출석을 요구하겠지만, 두 의원이 이에 응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체포영장을 청구하기로 결정하면 청구 시점은 6월 임시국회가 종료되는 시점인 오는 7월7일 직후가 될 전망이다. 추경을 위한 임시국회가 조기에 열릴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출석 없이 조사를 마무리하기로 결정하면 검찰은 두 의원을 상대로 서면조사를 진행하게 된다. 서면조사 여부는 당국의 재량이지만, 서면조사도 없이 수사를 마무리하면 리스트 속 인사들이나 노건평씨와 형평이 맞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두 의원이 자진 출석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리스트 속 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한 가운데 현직 의원들을 강제 구인하는 것은 시기상 부적절하고, 당초 출석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서면조사로 마무리한다면 당국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는 처분이라는 지적이다. 할 수 밖에 없는 특검 결국 검찰 수사가 대선자금 수사 문턱에도 다가가지 못했고, 형평에도 맞지 않는 부실수사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 특검은 사실상 기정사실화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지난 2012년 이명박 정부 당시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의혹과 관련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가 수사 후에 잇단 의혹이 제기되면서 특검을 통해 사실상 재수사가 진행되는 굴욕을 맛본 적이 있다. 정치권에서 특검 요구가 나오는 가운데 검찰 수사가 건드리지 못한 의혹이 터져 나올지 주목된다. kimstory2@naver.com <무단전재 및 배포금지. 본 기사의 저작권은 <주간현대>에 있습니다.> 원본 기사 보기:주간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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