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에 정가의 이목이 쏠린다. 국회법 개정안과 관련한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인해 당내 친박계의 유 원내대표 사퇴 압박 요구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동시에 박 대통령이 유 원내대표가 자기 정치를 하고 있다는 판단하에 더는 함께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유 원내대표의 자진사퇴는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유 원내대표가 이번 사태를 겪는 동안 오히려 역설적으로 대중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성과를 얻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편집자주>
원내대표 사퇴요구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 전락
안에선 친박계가 흔들고, 밖에선 새정치가 압박 새누리당 의총서 재신임…평탄치 않은 미래 예고
거취 논란 속 ‘남는 장사’…대권주자 4위로 ‘부상’
▲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자신의 거취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 6월2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었다. © 주간현대 | |
[주간현대=이동림 기자] 국회법 개정안과 관련한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인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에 대한 청와대와 당내 친박계의 사퇴 압력이 거세다. 유 원내대표가 지금은 버티고 있지만 조만간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에 무게감이 실린다.
유승민 흔들기6월25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를 사실상 ‘불신임’했지만, 새누리당은 의원총회를 열어 유 원내대표를 일단 ‘재신임’했다. 유 원내대표도 이날 친박계의 사퇴 요구에 대해 “더 잘하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이겠다”며 사퇴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당내 친박근혜계 의원들의 지속적 흔들기와 청와대의 냉랭한 태도, 야당의 반발 등으로 유 원내대표의 앞길이 순탄치는 않다.
유 원내대표는 이날 4시간45분에 걸친 의원총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의원들이 원내대표인 나와 청와대 사이에 소통이 원활치 못했던 점에 대해 걱정도 하고 질책도 했다”며 “그 점에 대해선 내가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앞으로 당청 관계를 다시 복원시키고자 나나 당 대표, 최고위원과 같이 의논해 복원시키는 길을 찾아보겠다고 약속을 드렸다”고 전했다. 그는 의총 뒤 원내부대표단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사퇴를 요구하는 의원들이 많으면 물러나려고 했다”고 그간의 ‘마음고생’을 털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유 원내대표가 “대통령과 충돌을 피하기 위해 국회법을 재의결하지 않겠다”고 함으로써 당내 갈등은 일단 가라앉는 분위기다. 하지만 청와대와 당내 친박 세력들의 끊임없는 ‘유승민 흔들기’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친박계인 김태흠 의원은 의총 뒤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유 원내대표의 유임은 당내 화근으로 남을 것”이라며 “당내에서 원내대표로서의 권위와 신뢰를 이미 상실했고 청와대와의 관계 회복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친박계의 다른 의원은 “유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가 오늘로 끝난 게 아니다. 앞으로 계속 나올 수밖에 없는 얘기”라고 말했다.
유 원내대표와 청와대의 ‘소통 단절’도 하루아침에 극복하긴 쉽지 않은 과제다. 박 대통령이 이날 국무회의에서 유 원내대표를 콕 찍어서 불만을 표한 만큼, 유 원내대표의 유임을 반길 리 없어 보인다. 김태흠 의원은 “박 대통령의 오늘 메시지는 ‘유승민과 같이 갈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청와대가 유 원내대표와의 당·정·청 협의를 계속 거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유 원내대표가 지난 4월 원내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밝힌 법인세 인상 등 청와대 기조와 배치되는 정책 노선을 본격화하는 데도 제약이 따를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유 원내대표에게는 “당분간 청와대와의 관계를 고려해 완급조절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친박계인 함진규 의원은 “유 원내대표가 정책을 의견수렴 없이 자기 마음대로 추진하려 한다면 사퇴론이 또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야당과의 불화도 감수해야 한다. 새누리당이 이날 의총에서 국회법 개정안을 재의결에 부치지 않고 자동폐기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야당과의 전면전이 불가피한 상황. 정의화 국회의장은 6일 “헌법 절차대로 하겠다”며 국회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헌법 제53조 4항을 보면, “(대통령의 법률안) 재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국회는 재의에 부친다. 재적 의원 과반수(149명)의 출석과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다시 의결하면 그 법률안은 법률로서 확정된다”고 돼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재의결은 불가능해 보인다. 현실적으로 과반 의석(160석)을 보유한 새누리당이 국회법 개정안 재의결을 반대하며 본회의에 불참하면 의사정족수 미달로 본회의를 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국회법 개정안은 19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 자동 폐기된다. 이번 사건으로 헌법이 보장한 권한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무능한 입법권자(국회)를 재확인한 셈이다.
새정치연합 박수현 원내대변인은 “211명의 국회의원이 합의하여 국회를 통과시킨 국민과의 약속을 파기한 것이다. 여야 간 합의도 헌신짝처럼 저버린 배신의 정치”라며 “새누리당이 국회의 권리와 의무를 스스로 포기함으로써 의회민주주의에 조종을 울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 원내대표의 측근들은 “우선은 여당 내부를 수습하는 게 중요하고, 야당과의 관계는 그다음”이라며 “이제 야당과도 잘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거치면서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유 원내대표로서는 정치적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6월29일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를 놓고 긴급최고위원회의를 열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김무성 대표를 비롯해 다수 최고위원은 유 원내대표의 자진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피력했지만, 유 원내대표는 “생각해 보겠다”며 결정을 미뤘다. 이에 따라 유 원내대표 사퇴 논란은 친박계와 비박계가 격돌하는 양상 속에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대표는 이날 오후 최고위원회의 직후 “주된 대화 내용은 어쨌든 결과에 대한 책임은 누군가 져야 하고, 유 원내대표가 지는 것이 좋다는 것”이라며 “(저는) 당대표로서 어떤 경우라도 당의 파국은 막아야 되는 의무가 있다는 입장을 얘기했다”고 밝혔다. 당초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막으려 할 것으로 예상됐던 김 대표의 입장도 달라진 것으로 해석됐다.
친박계 좌장 격인 서청원 최고위원도 “유 원내대표는 늘 박근혜 대통령의 성공을 빈다고 얘기했다”며 “지금이 박근혜 정부를 성공시킬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인데 유 원내대표의 대승적 결단이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지도부 내 대표적 친박계인 서 최고위원과 이정현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에 있었던 당 최고위에 참석하지 않으면서 유 원내대표 거취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유 원내대표의 사퇴가 ‘초읽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유 원내대표는 이에 대해 “최고위원의 말씀을 제가 경청했고, 생각해 보겠다고 답했다”, “당내 의견을 더 들어봐야 한다”고 말해 ‘버티기’에 들어갈 가능성도 제기됐다. 한편, 비박계 재선 의원 20명은 이날 국회에서 긴급회동을 가진 뒤 성명을 통해 “(유 원내대표를 재신임한) 의원총회 결과를 무색하게 하면서 원내대표 사퇴를 주장해 당내 분란이 확산하고 있다”며 친박계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유 원내대표가 이번 사태를 겪는 동안 오히려 역설적으로 대중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성과를 얻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리얼미터가 지난 6월23~ 24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권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ARS/95%±3.1%포인트/5.5%)에서 유 원내대표는 전달 대비 2%포인트 상승한 5.4%를 기록해 4위로 뛰어올랐다. 이 과정에서 원희룡 제주지사와 정몽준 전 의원 등을 제쳤다.
유 원내대표는 지난 1월 당내 경선에서 149표 중 84표를 얻어 원내사령탑의 지위에 올랐다. 당시 비박계를 중심으로 한 전폭적인 지지가 원동력이 됐다. 26일 의원총회에서도 국회법 개정안 재의 표결을 하지 않기로 당론이 정해지면서 유 원내대표에 대한 사실상의 ‘재신임’이 이뤄진 것은 이 같은 지지가 여전하다는 점을 방증하는 것이란 해석이다.
정치적 밑거름이처럼 위기가 기회로 바뀌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유 원내대표로서는 물러나더라도 다시금 정치 전면에 나설 정치적 자산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한 여당 내 개혁 세력의 전폭적 지지와 더불어 야권으로부터의 호감도, 부동층에서 이는 동정론 등이 결합될 경우 유 원내대표의 정치적 기반이 더욱 탄탄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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