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연금 개혁을 강력히 밀어붙이던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행보가 이상하다. 규정이 상당수 비슷해 사실상 한묶음 취급인 ‘사학연금’과 ‘군인연금’ 개혁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야권은 청와대에 ‘연금개혁에 대한 입장표명’을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답이 없다. 결국 연금개혁을 주도하기 위해 새누리당이 나설 수밖에 없는 입장이지만 총선이 10개월 남짓밖에 남지 않아 사회적 파장이 강한 연금개혁을 손대기에는 부담감이 크기 때문이다. <편집자주>
‘사학연금’ 카드 조심스레 꺼내들기 시작한 새누리당 연금개혁 주도권 가진 野…끝판왕 ‘군인연금’도 거론 ‘메르스 직격탄’으로 아직까진 숨죽이고 있는 청와대 형평성 맞춰야하는 연금개혁…셈법 갈려버린 정치권 [주간현대=김범준 기자] 진통 끝에 공무원연금 개편을 마무리한 정치권이 사학연금 개편을 위해 또 한 번 ‘메스’를 꺼내 들 태세다. 3대 직역연금(공무원연금·사학연금·군인연금)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공무원연금 개편 당시 정치권 안팎에서는 사학연금과 군인연금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학연금법과 군인연금법의 규정 중 상당 부분이 공무원연금법 규정을 준용하고 있어 공무원연금법만 개정할 경우 신·구 규정 간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정부도 올해 하반기까지 사학연금과 군인연금 개혁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학연금 개혁 준비 與 당시에는 공무원연금 개편에 따른 공무원 단체의 반발이 거세지자 여권이 사학연금과 군인연금까지 논의를 확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22일 최고위원회의에 김재춘 교육부 차관을 출석시켜 사학연금의 재정운용과 수지 전망 등을 보고받는 등 사학연금 개편 검토에 착수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사학연금은 공무원연금에 준용되고 연동된다”며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이 단 한 표의 반대도 없이 국회를 통과한 만큼 사학연금도 논의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 원내대표는 “정치적으로 예민한 주제지만 논의를 피할 수는 없다”면서 “국·공립 교직원과 사립학교 교직원 사이에 형평성의 원칙을 지키면서 최대한 공정하게 논의해 결론을 내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새누리당은 일단 사학연금법 개정 초읽기에 들어갔다. 내년 초 개정 공무원연금법의 시행에 따라 공립학교와 사립학교 교원 간 형평성 확보를 위해 사학연금법 개정이 불가피하다지만, 공적연금 개혁 논의가 전면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새누리당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교육부로부터 메르스 현안과 함께 사학연금법 개정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이 자리에는 국회 공무원연금개혁특위 위원장을 지낸 주호영 의원이 참석해 그간 당에서 논의해온 관련법 개정안의 개괄적인 내용도 제시했다. 이른바 ‘메르스 정국’의 와중에 사학연금법 개정 논의가 시작되는 이유는 공무원연금법을 따르는 국공립교원과 사학연금법을 따르는 사립교원 간 형평성 문제 때문이다. 통상 사학연금법은 공무원연금법을 준용하는 만큼 지난 5월 국회를 통과한 ‘더 내고 덜 받는’ 내용의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에 따라 사학연금법 일부 조항을 손보지 않으면 교원 간 연금체계가 완전히 달라져 혼선이 불가피해지는 것이다. 실제로 개정 공무원연금법에 따라 공립교원의 지급률은 향후 20년간 1.9%에서 1.7%로 단계적으로 줄어들지만, 사립교원은 내년에 바로 1.7%까지 줄어든다. 사립학교법상 연금 지급률은 공무원연급법의 ‘본문’을 준용하게 돼 있는데 ‘20년간 단계적으로 조정한다’는 부분이 본문이 아닌 ‘부칙’에 명시된 탓이다. 또 준용 규정이 없는 기여율의 경우 사립교원은 9%가 아닌 현행 7%를 적용받게 된다. 국회 공무원연금개혁특위 위원장을 지낸 주호영 의원은 지난 6월21일 “형평성 문제를 손보면 자연스럽게 사학연금은 공무원연금을 따라가게 돼 있고 내용 면에서 사학연금도 개혁이 되는 것”이라며 “공무원연금법 개정 내용에 맞춰 사학연금법도 반드시 개정해야 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세 차례(1995년·2000년·2009년) 공무원연금 개혁 당시 사학연금법도 거의 동시에 개정된데다 사학연금 제도가 도입된 1975년 이후 40년간 이어진 교직원 간 형평성을 고려하면 공무원연금 개혁에 따른 사학연금법 개정은 선택이 아닌 필수인 셈이다. 쉽지 않은 연금개혁 다만 새누리당이 당장 사학연금 개편에 착수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내년 총선이 10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만큼 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을 이슈에 선뜻 손을 대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사학연금법 개정 움직임에 대해 일각에선 새누리당이 주도하는 ‘연금 개혁 2탄’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왔지만 가능성이 높지는 않아 보인다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국회 차원의 특위와 사회적대타협기구 설치 등을 통해 이해관계자들을 설득시켰던 공무원연금 개혁 과정이 만만치 않았던데다 향후 정치 일정도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여당은 다가올 정기국회에서 메르스 후속 대책과 예산안 처리, 경제활성화 법안 처리 등을 중심에 놓을 수밖에 없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청와대나 정부가 공적연금 개혁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며 적극 추진해야 특수직역연금의 최대 난제로 꼽히는 군인연금 개혁이 가능하고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 과정에서 공론화하기 시작한 국민연금ㆍ기초연금 등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도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도 “현 시점에서 사학연금법 개정을 둘러싼 논란은 크지 않겠지만 연금 자체가 워낙 민감한 소재라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면서 “군인연금만 해도 교원에 비해 계급정년에 따른 조기퇴직이 많고 업무의 위험성에 따라 생명수당의 성격이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정권에서 손대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때문에 사학연금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할 경우 여야가 정면충돌할 공산이 커 보인다. 청와대나 새누리당은 공무원연금 개혁에 따른 후속조치 성격이 강한 사학연금법 개정을 통해 ‘사학연금 개혁’이라는 명분을 과시하되 추가적인 공적연금 개혁에는 소극적일 가능성이 높다. 반면 야당 입장에선 기왕에 주도권을 확보한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확대는 물론 내친김에 군인연금 개혁까지 요구할 수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여야가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 이후 공적연금 강화 특위를 만들어놓고 아직까지 인선조차 못하고 있는 것은 양측의 정치적 셈법이 전혀 다르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모르쇠’ 하지만 공무원연금 개혁을 집권 3년차 최우선 국정과제로 꼽은 청와대가 어찌된 일인지 사학연금과 군인연금 개혁에는 말을 아끼고 있다. 개혁의 필요성을 따지면 공무원연금만큼 중요하지만 개정 논의를 시작한 사학연금과 개혁 불가피성이 제기되는 군인연금에는 모르쇠로 일관해 궁금증을 낳고 있다. 청와대가 입을 닫은 상황에 총대를 메야 하는 여당도 편치 않은 입장이다. 당정이 사학연금 개편 논의의 불을 댕기자 공무원연금·사학연금과 함께 ‘최대난제’로 꼽히는 군인연금의 개정 필요성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강기정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의장은 지난 6월23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이제라도 정부는 공무원연금법 개정 이후 당연히 개정돼야 할 사학연금이나 군인연금에 대한 방향과 입장을 분명히 내놓고 야당에 협조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각각 별도의 법 규정이 있지만 사학연금법과 군인연금법은 공무원연금법을 준용하는 규정이 많다. 공무원연금법 개정에 따라 연쇄조정이 불가피하다. 당정이 사학연금 개정 논의에 나선 것도 혼란을 막기 위해서다.
정부가 당초 지난해 12월 공무원연금법을 개정하고 나면 올해 6월 사학연금을, 10월에는 군인연금을 개혁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당시 발표 하루 만에 정부 의견이 아니라고 발을 뺀 것 역시 전략적 판단으로 평가됐다. 공무원에 교직원·군인까지 연계해 연금개혁에 반발하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가장 중요한 공무원연금을 우선 내세웠다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공무원연금 개혁을 이뤘지만 청와대는 사학연금과 군인연금에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다. 메르스 사태로 정국이 혼란스럽다고는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공무원연금 개혁을 호소하던 모습과는 분명 다르다. 정치권에서는 메르스 여파로 지지율이 급락한 청와대가 정치적 부담을 우려해 일단 숨죽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새누리당의 한 당직자는 “메르스에, 가뭄에 가뜩이나 먹고살기 힘들다고 국민들이 아우성”이라며 “여기에 교직원과 군인 연금을 줄이겠다고 하면 가만히 있겠느냐”고 말했다. 연금 간 특수성도 고려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무원에 비해 교직원·군인이 상대적으로 보수 성향이라는 것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반발표를 늘릴 필요는 없다는 평가다. 여당에서는 이에 따라 사학연금법과 군인연금법 개정안은 주무부처인 교육부와 국방부가 정부 입법으로 발의해주기를 바라는 눈치다. 필수 되어버린 개혁 이처럼 정치권에서 사학연금과 군인연금으로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하면서 개혁 가능성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우리나라 특수직역연금인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은 서로 간에 제도적 유기성을 갖고 있다. 그중 가장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공무원연금이 개정됨에 따라 변화가 불가피하다. 사학교교직원연금법은 사학 교직원 연금액을 계산할 때 공무원연금 산정방식을 상당 부분 따르도록 규정돼 있는 등 공무원연금법을 준용하는 규정이 많다. 군인연금법도 공무원연금법이 개정될 때마다 관례적으로 그 내용에 맞춰 고쳐졌다. 한 복지 전문가는 “정부는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바탕으로 특수직역연금도 손 봐야 한다”며 “사학연금은 거의 비슷한 형태로 개혁이 이뤄지고 군인연금은 직업적 특성을 고려해 적용해 갈 전망”이라고 말했다. 군인연금은 현재도 심각한 적자 상태다. 1974년부터 재정 부족분을 국가보조금으로 매우고 있다. 2030년까지 군인연금 누적 국가보전금은 32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3 국방통계연보에 따르면 군인연금에 투입되는 국가보조금은 지난 2010년 1조566억원으로 1조원대를 넘어섰고 2011년 1조2266억원, 2012년 2499억원, 2013년 1조3691억원 등으로 계속 증가 추세다. 앞으로가 더 심각하다. 고령화와 수급인원 증가로 국가보조금이 급격히 늘어날 전망이다. 1994년 4만4500명 이었던 연금수급자가 2013년 현재 8만2313명으로 4만 명가량 늘었다. 매년 2000명가량 수급자가 늘고 있는 추세다. 다만 군대라는 특수성을 감안해 군인연금은 공무원연금과는 다른 관점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군인들은 계급정년 등의 영향으로 공무원에 비해 퇴역 시기가 빠르다. 자녀교육비 등으로 가장 많은 돈이 지출되는 시기인 40∼50대 초반에 퇴역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반 사회와 동떨어진 역내 생활을 해야하는 등 사회에 나와 재취업도 어려운 애로사항도 있다. 한 경제학 전문가는 “군인연금의 경우 적자폭이 크지만 계급정년이 적용되는 등 생애 리스크가 달라 좀 다르게 봐야할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사립학교 교직원 28만 명이 가입한 사학연금도 예외는 아니다. 사학연금은 현재는 흑자 상태이나 2022년 23조8000억원으로 기금액이 최고조에 달한 이후 지속적으로 기금액이 줄어들어 2033년쯤 고갈될 것으로 보인다. 사학연금은 당장 적자 상황은 아니지만 수급자가 받아가는 급여액이 상대적으로 높고, 저출산이라는 사회적인 현상의 직격탄을 맞기 때문에 향후 급격하게 재정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사학연금 교원들은 대학교수 정년이 65세에 달하는 등 기본적으로 재직기간이 길다. 그렇다보니 받아가는 급여액이 상대적으로 높다. 지난 2월 현재 1인당 사학연금 수급자의 평균 연금월액은 267만원이다. 한 복지 전문가는 “사학연금은 저출산이라는 사회적 현상에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어 향후 재정상황은 더 심각할 수 있다”며 “저출산 현상으로 학생 숫자가 줄어들 것이고 신임 교원들도 급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사학연금 가입자 28만 명 중에 수급자는 5만3000여 명이다. 향후 가입자 수 대비 수급자 수가 급증할 것이란 전망이다. kimstory2@naver.com <무단전재 및 배포금지. 본 기사의 저작권은 <주간현대>에 있습니다.> 원본 기사 보기:주간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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