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전패하며 야권 분열 책임론 직격한 진보정당
진보통합 최대변수 호남신당…천정배와 ‘파이싸움’ 정치개혁 논의서 소외…선거구개편 진보의견 배제 소멸 위기에 커지는 ‘자성 목소리’…‘바꿔야 산다’ 지난 4·29 재보궐선거 최대의 화젯거리 중 하나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전패였다.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이 4곳의 선거구 중 단 한 곳도 승리하지 못하면서 문재인 대표마저 위기에 빠진 것이다. 하지만 패배한 곳은 새정치연합뿐이 아니다. 원내 3당인 정의당은 물론, 원외정당인 노동당 그리고 창당 준비 중인 국민모임 등 ‘진보정당’이 모두 전패한 것이다. 특히 야권의 대선주자까지 지냈던 정동영 전 의원을 내세우고 패배하면서 ‘야권 분열’ 이미지까지 생겨버렸다. 결국 ‘옛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시작된 선거에서 우리나라 ‘진보정당’의 앞날은 한층 더 어두워졌다. [주간현대=김범준 기자] 진보정당들이 옛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치러진 4·29 재보궐선거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위기에 빠졌다. 특히 이번 선거의 패배가 ‘야권분열’이라는 분석이 주로 제기되면서 향후 입지는 더욱 어두워져 버렸다. 전패한 진보정당 국민모임이 4·29 재보궐선거에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을 내세워 서울 관악을 지역 당선을 목표로 했지만 결국 20%대 지지율을 보이며 낙선했다. 정의당 또한 광주서구을과 인천 서구강화을에 후보를 냈지만 한 자릿대 지지율을 보였다. 이번 선거는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심판은 물론, ‘진보정치’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여전히 미미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였다는 평이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선거 결과로 진보정치 재편 논의에도 제동이 걸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국민모임 창당준비위원회 김세균 상임대표는 지난 5월4일 “진보연대와 통합만이 답”이라며, 진보정치 재편에 적극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상임대표는 이날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이번 선거가 보여준 또 다른 중요한 교훈이 있다. 그것은 새정치연합만이 아니라 제3당이자 유일한 원내 진보정당인 정의당도, 또 다른 진보정당인 노동당도, 나아가 현재 창당을 준비 중인 국민모임도 한국정치의 대안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이들 모두 아우르는 통합된 대중적 진보정당만이 우리의 희망이라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국민모임은 출범 시점부터 정의당, 노동당, 노동정치연대와 함께 4자연대체를 구성, 새로운 대중적인 진보정당 건설을 추진해왔다. 이들은 4·29 재보선이 이 같은 흐름에 대한 국민적 지지 정도를 평가하고, 세력 확대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때문에 4자연대체는 정무협의회를 통해 국민모임 정동영 후보가 출마하기 직전까지 후보 간 연대 방법 등이 끊임없이 논의했다. 하지만 국민모임이 관악을 선거에서 정동영 후보의 출마에서 후보 등록까지 4자 간 협의 없이 진행하며 갈등을 일으켰고, 이에 정의당은 끝내 후보 연대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국민모임은 관악을 외의 정의당 후보들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고 정의당은 관악을 후보를 사퇴하면서 우회적으로 연대하기는 했지만, 그 모습은 갈등을 봉합하는 수준에 그쳐 재보선 이후 진보정치 재편은 물 건너갔다는 다소 극단적인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반면 국민모임이 4·29 재보선 과정에서 저지른 실책을 자양분 삼아 진보정치 재편을 적극 추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우려와 기대 속에서 국민모임은 이날 중단된 4자 정무협의회를 다시 가동하고, 진보정치 재편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상임대표는 “우리 측의 의도하지 않은 실책으로 전면적인 4자연대를 관철시키지 못한 것은 이미 공개적으로 밝혔듯이 죄송스럽고, 안타까운 일”이라며 “이번 선거에 정의당, 국민모임 등 진보정치세력들이 후보를 낸 관악과 인천, 광주의 세 선거구에서 나타난 선거결과는 지금과 같이 분열된 상태에서의 각개약진은 대중적 지지와 신뢰를 얻어낼 수 없으며 진보정치세력이 새정치연합을 교체하는 대안적 야당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고 평했다. 그는 “정의당, 노동당, 노동정치연대 그리고 국민모임으로 상징되는 이 땅의 진보세력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은 간단하다”며 “지난 선거과정에서 중단된 4자 정무협의회를 복원시키고 다양한 차원에서 진보연대를 확대·심화해 내년 총선 전에 진보통합을 관철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물론 각 정치세력이 가지고 있는 역사성과 내부적 사정 등을 고려할 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면서도 “위기에 처한 진보정치를 구하기 위해서는, 나아가 썩어 문드러진 한국 정치를 발본적으로 혁신하여 벼랑 끝에 몰린 대중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모든 진보적 정치세력이 작은 차이와 기득권을 넘어 연대와 통합을 위해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이를 위해 국민모임 역시 살신성인의 자세로 모든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도 4·29 재보선 이후 불거지고 있는 야권 재편에 대해 비슷한 입장을 밝혔다. 진보 재결집을 이루고 이후 새정치민주연합 등 제1야당과 선거 연대를 통해 새누리당에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노 전 대표는 지난 5월4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4·29 재보선 결과에 대해 “작은 당이긴 하지만 정의당도 심각한 판정을 받았다”며 “최근 몇 차례 선거에서 드러나는 성적표를 보자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당의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표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우선 진보세력들을 진보정당으로 재결집하는 진보 재편이 우선”이라며 “이후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과는 경쟁적 협력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정책적으로는 경쟁하면서도 큰 선거에서는 야권 지지층의 바람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연대 전략을 함께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변수, 호남 하지만 국민모임이 꿈꾸는 새로운 진보연대는 쉽지 않은 상황에 빠졌다. 4·29 재보궐선거로 당선된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호남 중심의 정치세력화를 선언하면서 야권 지형이 복잡한 구도로 흐르게 된 것이다. 4월29일 광주 서을 보궐선거에서 새정치연합 후보에게 압승한 천 의원은 “내년까지 광주에서 ‘새로운 김대중’이라고 할 수 있는 참신하고 실력 있는 인재들을 모아 새정치연합과 경쟁하겠다”고 밝혔다. 천 의원은 선거 기간에 무력한 야권에 혁신의 긴장감을 불어넣는 ‘천정배 메기 효과’(메기 한 마리를 풀면 미꾸라지들이 먹히지 않으려고 활발해지는 효과)를 강조했고, 광주 민심은 이를 수용했다.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내년 4월 총선 때 호남에서 ‘제2의 천정배 사례’를 만들겠다는 뜻이다. 천정배 의원이 세력화 구상을 내놓으면서 향후 야권은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 진보 결집 세력(정의당·노동당·국민모임), 천정배 세력, 당 해산 이후 기성 정치권 바깥으로 밀린 옛 통합진보당 세력 등 4개의 정치세력이 독자 세력화와 야권 연대 사이에서 탐색전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광주에서 압승한 천 의원이 호남에서 세력화 깃발을 들겠다고 나서면서, 새정치연합뿐 아니라 진보 결집을 시도하던 주체들의 생각도 복잡해지고 있다. 유일한 원내 정당인 정의당, 원외 정당인 노동당, 정동영 전 의원이 주도하는 국민모임 등은 진보세력이 결집한 정당을 만든다는 목표 아래, 이번 재보선 이후 구체적 논의를 이어갈 계획이었다. 이들은 내년 총선 이전에 진보정치가 결집하면, 단기적으론 진보정당 지지자와 새누리당에 비판적이면서 새정치연합에 실망한 유권자, 진보정치에 반감이 적은 호남 유권자, 수도권에 사는 출향 호남인 등의 지지를 얻을 것이란 기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국민모임 소속의 정동영 전 의원이 이번 서울 관악을 보궐선거에서 ‘3등’으로 낙선하며 진보 결집 논의의 힘이 빠지게 됐고, 그사이 천 의원은 새정치연합에 등을 돌린 호남 유권자를 흡수하려는 세력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의당·노동당·국민모임이 진보 결집을 이뤄 내년 총선에 임하더라도 적어도 호남에서 새정치연합에 비판적인 유권자를 잡으려면 ‘천정배 세력’과 경쟁해야 하는 변수가 생겨난 것이다. 그간 천 의원은 진보 결집을 진행하던 국민모임 등과 함께할 생각이 없다는 뜻을 밝혀왔다. 진보 결집 논의 주체 가운데 한 핵심 인사는 “진보정치가 결집하자는 이유 중 하나는 새정치연합을 대체하는 세력이 되자는 것인데 그 자리의 일부를 천정배 의원이 차지하게 됐다. 적어도 호남에서 진보 결집 세력이 지지받고 싶어했던 유권자를 천정배 의원 측에게 잃을 가능성이 생겼다”고 말했다. 정동영 전 장관의 낙선으로 국민모임이 타격을 받으면서 진보 결집 논의 자체가 위기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물음도 고개를 든다. 야권에선 국민모임 내부에서 애초 계획대로 정의당·노동당과 진보 결집을 진행하자는 쪽과, 호남을 기반으로 야권을 쇄신하자고 주장하는 ‘천정배 세력화’의 흐름과 같이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엇갈릴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정의당의 한 의원은 “지금으로선 국민모임이 지속 가능할지도 의문이 든다. 국민모임이 진보 결집의 추진 동력이 떨어진 상황이라 진보 재편 논의의 주체와 방향, 논의 속도를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왕에 어렵게 시작된 진보 결집 논의를 발빠르게 진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진보계의 한 인사는 “정의당·노동당은 자기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국민모임은 재보선 여파 때문에 갈피를 잡지 못하면 진보 결집 흐름이 굉장히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지금은 정의당·노동당·국민모임을 주축으로 한 진보 결집의 흐름이 강화되느냐, 천정배 의원을 중심으로 호남에서 새정치연합 대체를 자임하는 세력이 강화되느냐의 기로에 있다”고 말했다. 천 의원의 ‘당선 파장’이 야권 지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셈이다. 정치개혁 논의서 소외 이같이 지지부진한 ‘진보 결집’논의로 인해 국회에서 진행되는 각종 정치개혁 논의에서도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선거제도 개선 논의가 진행 중인 가운데 논의에 참여하지 못하는 진보정당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논의가 사실상 두 거대정당 위주로 이뤄지면서, 진보정당의 의견이 배제되는 것은 물론 자체적으로 국민들에게 알리고 공론화하는데도 어려움이 크다는 호소다. 현재 가동 중인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위원장을 포함해 모두 20명으로 구성돼있다. 이 가운데 새누리당이 위원장과 위원 등 10명, 새정치민주연합 위원이 9명이다. 두 정당 소속이 아닌 위원은 정의당의 심상정 원내대표가 유일하다. 소속 국회의원이 없는 노동당 등 원외정당은 아예 참여할 수 없는 구조다. 이에 정의당의 한 당직자는 “자체적으로는 당내 정치똑바로특위를 통해 선거제도 개선안을 논의했고 이번에 나온 ‘심상정 안’ 역시 그 결과물”이라면서도 “그러나 언론에 주요 의제로 나오는 것은 거대 양당 간 논의이고 그 외 정당의 목소리를 국민들에게 들려주기가 너무 어렵다”고 말했다.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는 국회의원 수를 360명으로 늘려 지역구 의원 240명, 비례대표를 120명으로 하자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노동당 관계자 역시 “당에서 생각하는 기본 방향은 정당지지율과 의석점유율이 일치해야 하고, 다양한 노선과 정책적 차이가 드러나는 경쟁적인 정당체제를 갖추자는 것”이라면서도 참여에 제약이 따르는 상황에 대해서는 답답함을 드러냈다. 선거제도 개선과 관련해 비례제 강화와 석패율제 도입, 구시군당 허용 등 여러 주제가 있지만 국회 정치개혁특위의 논의는 선거구 획정에 치우친 상태다. 이를 두고 양당의 이해관계에 따른 기득권 지키기 식 논의로 흐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 진보정당의 한 관계자는 “지난 1월 진행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0%가 헌재의 헌법불합치 판결을 모른다고 답했다”며 “실제 일반 시민들을 만나보면 헌재 판결이 어떻고, 선거제도 개선이 어떻고 알아듣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유권자인 국민도 정치개혁 논의에서 소외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 정치제도의 문제를 바로잡자는 정치개혁 논의 과정에서, 다양성이 실종된 우리의 정치 현실이 오히려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대해 한 정치편론가는 “선거제도 개선은 어떤 정파적인 이익이나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그동안 한국정치에 누적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또 다른 고민의 장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소선거구제, 즉 승자독식”이라며 “당연히 거대정당에 유리하고 작은 정당이나 신생정당은 크지 못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진보위기의 해결책 이런 정치개혁에 대해 ‘진보적 가치’를 사실상 관철시키기 어려운 이유로 진보정당 자체의 잘못이 크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이미 ‘소멸’을 걱정할 만큼 여론으로부터 고립된 진보정당의 현주소가 위기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결국 진보세력들은 새로운 ‘진보정당의 건설’은 절박한 과제가 됐다. 진보 계 내부에서는 치열한 자성과 신뢰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꼽고 있다.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현장 노동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다시 진보대통합이 이뤄져야 하는 게 급선무”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권 전 대표는 “현장 노동자들이 진보정당을 버린 것은 정파 패권주의로 분열된 것, 민생 정책정당을 버리고 정파놀음에 몰두했기 때문”이라며 “진보대통합은 세 경로로 이뤄져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현장 노동자들을 주축으로 한 진보정당 건설이고, 그 다음으로 기존 정의당·노동당 등 진보정당을 통합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또 하나는 학계·문화계가 주도하고 있는 새로운 진보정당이 건설된 뒤 모두 결합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라며 “이를 통해 경제민주화, 비정규직 문제 개선, 보편적 복지, 평화통일 의제를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imstory2@hyundaenews.com 원본 기사 보기:주간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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