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반년 가까운 기간 동안 협상해서 합의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박근혜 대통령의 한마디로 휴지조각이 됐다. 이에 어깃장을 놓은 당정청은 물론 이를 끝까지 반대해 파탄을 가져온 야권 모두 아마추어적인 협상 마인드가 전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청와대 측은 악화되는 여론에 모든 원인을 정치권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이와 발맞춰 개혁안 파탄에 대해 새누리당 내 친박계 인사들도 ‘지도부 책임론’을 제기하고 나서 김무성 대표가 곤혹스러워졌다. <편집자 주>
합의한지 나흘 만에 버려진 ‘공무원연금 개혁 합의문’ 박근혜 반대로 파탄…여전했던 합의보단 독선 스타일 역습 시작한 친박…‘지도부 책임론’ 제기로 공세 나서 곤혹스러운 김무성…‘당청갈등’기미 보이자 조기 진화 [주간현대=김범준 기자] ‘공무원연금 개혁 합의문’이 작성된 지 나흘 만인 지난 5월6일 휴지통에 버려졌다. 새누리당 김무성,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양당 원내대표인 유승민, 우윤근 등 여야 최고 지도부가 모두 나서 합의문에 서명하고 보증을 섰지만 소용없었다. 4월 임시국회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가 무산되자 무상보육 지원을 위한 지방재정법, 연말정산 보완을 위한 소득세법 등 민생에 직결되는 법안 처리도 덩달아 멈춰 섰다. 당장 일부 지방에서는 어린이집 지원금이 끊길 형편이고, 연말정산 환급을 받아야 할 근로자도 피해를 보게 되자 정치권을 향한 비난 여론이 거세다. 경중에는 차이가 나겠지만 누군가는 책임져야 할 상황이 돼버렸다. 아마추어 협상한 ‘여야’
아무래도 1차적 책임론은 양당 협상팀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새누리당은 공무원을 적으로 돌릴 수 있는 연금 개혁을 선제적으로 추진하면서 명분을 안고 출발했지만, 기한을 5월6일로 정해 놓는 바람에 스스로 협상의 입지를 좁혔다. 공무원연금 논의 중 평소에는 받아들일 가능성이 낮은 ‘국민연금을 포함한 공적연금 강화’라는 제안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던 배경으로 작용했다. 당내에서조차 ‘집 팔아서 빚 갚자는데 차를 사느냐’는 비판이 일기 시작했다. 당 지도부는 협상 전략상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국민연금을 건드린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지적을 피해갈 수 없게 됐다. 새누리당의 한 당직자는 “공무원연금은 국민의 지지를 받기 때문에 우리가 조급할 필요가 없었다”면서 “그런데도 국가 미래에 중차대한 문제인 국민연금에 연계한 것은 아주 가볍고 경솔한 행태로 협상력 부재를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새정치민주연합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4·29 재보궐선거에서 전패하자 공무원 노조를 포함한 전통적 지지층을 더욱 의식해야만 하는 정치적 환경이 조성됐다. 겉으로는 시종 공무원연금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자체 대안을 내는 데 미온적이었던 새정치연합이 협상에 참여했 공무원 노조의 편을 드는 듯한 모습을 보인 이유다. 국민연금을 포함한 공적연금 강화 방안은 공무원연금 개혁 저지를 위한 ‘방패막이’라는 여론의 거센 반발에도 공무원 노조와 뜻을 같이했다. 여야 지도부의 합의문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인상’을 명문화해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하면서 판은 깨져 버렸다. 협상 주체였던 우윤근 전 원내대표는 지난 5월6일 오전까지도 “명문화가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공개적으로 발언할 만큼 유연한 태도를 보였지만, 문재인 대표가 강경하게 나오자 여기에 묻혔다. 당 일각에서도 이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야권의 한 인사는 “결과적으로는 소득대체율 50% 명기를 관철하려다가 아무것도 얻지 못한 셈”이라면서 “더욱 유연하게 협상에 접근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애초 공무원연금 개혁 완성 시기를 지난해 말로 설정하고 ‘속도전’을 주문했던 청와대도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집권 첫해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이듬해는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성과가 없다는 안팎의 비판에 조바심을 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정작 협상이 시작되자 당청 간 소통에 앞장서며 정치력을 발휘하는 모습은 포착되지 않았다. 짐짓 뒤로 물러서 있는 듯하다가 여야 간 합의문이 나오자 느닷없이 ‘월권’이라고 한 게 대표적인 장면이다. 새누리당의 한 당직자는 “모든 협상 과정을 마지막까지 청와대에 거의 실시간으로 전달했다”면서 “이 개혁을 주도했던 주체는 청와대였지만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특위 위원으로 협상에 참여한 새정치민주연합 김성주 의원도 “김무성 대표나 유승민 원내대표가 합의를 깼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초유의 민주주의 성공사례가 청와대의 몽니, 친박의 반대로 무산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협상 타결이 임박했을 때 정치권으로부터 설명받은 합의문과 실제 실무기구 합의문이 달랐다고 항변하고 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7일 오전 춘추관 브리핑에서 “실무기구 최종 합의안에 명목소득대체율 50%가 명기될 것이라는 사실을 사전에 알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당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를 종합해보면 결론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강경한 입장표명 한마디가 ‘공무원연금 개혁’을 파국으로 몰고 간 것으로 보인다. 여야, 정부, 관련 단체와 전문가들이 4개월여 동안 밀고 당긴 끝에 마련한 합의안이 대통령 한마디에 휴지 조각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이에 여당은 박 대통령의 ‘공무원·국민연금 연계 반대’ 입장에 합의 나흘 만에 ‘파기’로 입장을 바꿨다. 야당은 “대통령의 몽니”라며 반발하고, 여당 일각에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갈등의 마지막 조정·해결을 책임진 대통령이 오히려 혼란을 조장한 꼴이다. 파국 몰고 간 박근혜 그럼에도 청와대 김성우 홍보수석은 7일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 무산에 대해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내지 못해 유감”이라는 공식 입장을 냈다. 연금 개혁 무산 책임을 정치권 탓으로 돌린 것이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이 이번 개혁안이 만들어지기까지 ‘사회적 대타협’의 본질을 무시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합의안은 여야와 학계·시민단체 인사, 공무원단체, 행정자치부·인사혁신처 인사 등까지 참여한 실무기구가 4개월여 동안 협상 끝에 일궈낸 것이다. 박 대통령이 합의안에 포함된 국민연금 논의를 비난하면서 “먼저 국민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했지만, 각계 이해당사자들이 머리를 맞대 만든 합의로 일종의 ‘동의’ 과정을 거친 것으로 평가해야 하는 부분이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상향도 50%란 목표치를 제시했지만, 이제부터 사회적 기구를 구성해 구체적 방안에 대한 여론수렴과 이해당사자 합의를 만들어 가겠다는 것이 본질이었다. 더구나 청와대는 “국민을 위한 개혁을 해달라”고 정치권에 주문했다. 청와대 시각에서 지난 4개월여 동안 마련한 연금 개혁 합의안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탐탁지 않은 의제는 ‘반(反)국민’으로 규정하는 셈으로, 독선·아집 또는 불통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새누리당의 한 당직자는 “대통령이 문제를 대하는 방식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 바뀔 기회를 국민들이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성완종 리스트’가 4·29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터져나오는 등 국정 난맥상에도 투표를 통해 정치적 책임을 묻지 않다 보니 불통과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이 심해졌다는 토로다. 때문에 ‘소통 부족’으로 인한 당청 갈등은 앞으로도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임기 중반에 접어든 박근혜 대통령이 여전히 ‘타협’보다는 국회와 거리를 둔 채 정치권을 싸잡아 압박하는 식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공무원연금 개혁을 처리한 뒤 국민연금을 추후 논의하자’고 밝힌 것도 비판을 받는다. 합의안이 무산되면서 다시 논의를 모아가는 과정이 더 어렵게 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민연금은 논의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국민연금 제도 개선도 국민생활과 직결된 사회적 의제다. 정부가 논의 자체를 봉쇄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이야기가 많다. 특히 당초대로 합의안을 통과시켰다면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은 별개”라는 청와대 주장대로 공무원연금 개혁은 일단락 짓고, 국민연금에 대한 논의에 들어갈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공무원연금마저 희생시킬 만큼 국민연금 논의를 꺼리는 배경이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박 대통령의 ‘국민연금 트라우마’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공적연금 강화 논쟁의 불씨가 2013년 정부의 ‘기초연금’ 공약 파기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논의가 이어질수록 ‘약속의 정치인’ 박 대통령의 공약 파기 논란도 다시 부각될 수 있는 상황인 셈이다. 친박의 역습 박근혜 대통령의 ‘어깃장’으로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처리가 무산되면서 새누리당도 거센 후폭풍에 휘말렸다. 당내에서는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공무원연금 개혁의 시한 내 처리라는 족쇄에 갇혀 국민연금 연계 등 야당과 공무원단체의 무리한 요구를 대책 없이 수용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그동안 잠잠했던 당내 친박근혜계와 비박근혜계 간 계파 갈등과 당청 긴장 관계도 재연될 조짐이다. 개정안을 무산시킨 큰 흐름은 당내 친박-비박 갈등이었다. 친박계 의원들은 ‘50% 명기 불가론’으로 똘똘 뭉쳤다. 비박계인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는 지난 5월6일 저녁 7시에 열린 의원총회에서 최후 수단으로 ‘여야 잠정합의안’을 의원들 표결로 밀어붙여 처리하려고 했지만, 소수 친박 의원들의 결사저지에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정무특보인 ‘친박’ 윤상현 의원이 “원내지도부가 협상을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며 반대를 주도했다. 한 당내 인사는 “친박들의 반대는 매우 조직적으로 움직인다고 느껴졌다”고 말했다. 때문에 친박계에서는 개정안 처리 무산을 놓고 지도부 책임론을 거론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친박계 인사는 “공무원연금 개혁 합의안에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올리겠다는 내용을 덜컥 집어넣은 것 자체가 협상 전략의 실패”라며 “지금의 비판 여론을 어떻게 뛰어넘으려고 한 건지 정말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어 “당 대표와 원내대표 등 투톱 지도부가 공무원연금 개혁을 서둘러 마무리하겠다는 생각에 최고위원회 등 당내 의견 수렴을 소홀히 한 게 부메랑이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비판의 목소리가 주로 친박계 의원들 사이에서 분출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계파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5월6일 여야의 막판 협상 과정에서 열린 당 의원총회와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친박 좌장 격인 서청원 의원 등이 지도부의 협상력 부재를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비박계 중심의 권력지형 재편에 불만을 갖고 있는 친박계가 지도부의 리더십에 문제를 제기하며 반격의 기회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런 친박의 반란에는 내년 총선 공천을 앞두고 향후 당 운영의 주도권을 되찾으려는 ‘기선제압’의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당분간은 친박들도 ‘비박 지도부 흔들기’를 자제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4·29 재보궐선거에서 압승을 이끈 김 대표에 대한 당의 전반적인 지지가 높은데다, 청와대를 신경 쓰는 김 대표도 더 이상의 당내 분란을 원하지 않는 상황이다. 새누리당의 한 당직자는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의총에서 거수로 표결했으면 충분히 처리됐을 것”이라며 “하지만 김무성 대표가 친박이 강하게 반대하는데 표결을 밀어붙일 경우 부작용이 더 크다고 보고 포기한 것 같다”고 추측했다. 곤혹스러운 김무성 이처럼 김무성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당청갈등’으로 비쳐지는 것에 대해 크게 경계하는 상황이다. 김무성 대표는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의 지속적으로 “당청 소통은 충분하다”고 강조 하고 있다. 김 대표는 지난 5월8일 당청간 소통부족 지적에 대해 “그렇지 않다”면서 “주어진 여건 속에서 짧은 시간에 해야 하기 때문에 생략한 채 이야기한 게 오해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청와대와 충분히 소통했다. 전혀 소통 부족은 없었다”고 거듭 밝혔다. 이는 공무원연금법 개정안과 연계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상향조정 비율의 국회 규칙 명시 문제를 청와대가 미리 알고 있었느냐는 문제를 놓고 ‘당청 분란’이 일 조짐을 보이자 진화를 시도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 대표는 소득대체율 상향조정 비율 명시에 대해 청와대는 어떤 형태로든 ‘50% 명시’는 끝까지 반대했다고 강조했다. kimstory2@naver.com <무단전재 및 배포금지. 본 기사의 저작권은 <주간현대>에 있습니다.> 원본 기사 보기:주간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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