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 시즌이 닥아 오면 으레 히 일부 언론인들의 논조가 미래권력(?)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는 일종의 권력 아부현상이 극명하게 나타나곤 한다.
대선이 있는 금년에도 예외 없이 일부 방송이나 일부 신문 그리고 일부 인터넷 언론들이 눈에 띄게 미래권력(?)을 위해 낯부끄러운 고차적(?) 글과 말을 통해 공격과 방어의 향연을 시작 하였고 일부 언론인은 얼굴에 철판을 깔고 곡학아세 하듯 미래권력(?)을 상정하고 그 간교한 필봉을 지능적으로 휘둘러 댐으로써 그가 쌓아놓은 이름에 먹칠을 시작하고 있다. 필자가 언론과 인연을 맺은 것은 당시 주1회 12면으로 발행했던 大版 주간 신문이었던 S대학교 신문인 ‘대학신문’ 기자 생활이었다.60년대 중반부터 3년간 대학신문 기자로 재직하는 동안, 언론과 사회에 대한 관심이 지극해졌다. 본인은 치과대학에 재학하면서 ‘대학신문’ 기자로써 그 당시 시대상황이 투영된 고난과 고뇌의 시대를 함께 보냈다. 당시 S대 신문대학원은 대한민국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통털어 유일한 언론계 학과였다. 그 곳에 진학하겠다는 뜻을 세우고 공부를 하려니 필수는 영어였고 선택과목이 사회 과학중의 택일인지라 본인은 ‘정치학 개론’을 선택하여 원서 접수를 끝냈다. 당시 S대 신문대학원은 주간과 야간으로 이중 개설 되었는데 필자는 당시 응시 자격이 4년제 대학 졸업자로써 일간지나 방송 기자경력 5년 이상이어야만 야간 강좌를 선택 지원할 수 있었기에 선택의 여지없이 ‘주간’을 지원하여 대학 졸업생 및 졸업예정자들과 경쟁 할 수밖에 없었다. 주간의 입학 경쟁이 야간보다 더 치열했음은 물론이다. 왜냐하면 일간지나 방송 경력이 5년 이상이어야 특혜를 주는 범주에 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면접교수가 세 분으로 기억되는데, 면접관 앞에 앉으니 면접교수의 일원이신 박모 교수께서 ‘아니 치과대학 졸업했습니까? 지원 동기는 무엇입니까? 등등의 덕담을 주신 후 언론인의 중립성에 관한 질문을 하셨고 본인은 총론적인 적절한 대답을 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하여 석사과정(주간)에 합격 하였으나 본인이 병원 레지던트 생활을 하고 있는지라 학생처를 찾아가 ‘주간에 합격 했으나 야간에 강의 듣도록 해 달라’고 요청하여 흔쾌히 허락받고 나름대로 병원 일이 끝난 직후 주3회 오후 5시30분부터 밤10시까지 공부하여 신문대학원 석사학위를 받았다. 만약 당시에‘치과의사’가 아니었다면 틀림없이 대학에서 ‘언론학’교수보다는‘언론사 기자’의 길을 택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필자가 ‘신문대학원’에서 배웠던 시대적 과제는 ‘언론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이었다. 그 당시 대한민국이 유신시대를 열어갔던 시대상 속에서 ‘언론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 이라는 키워드는 매우 의미심장한 국민적 아젠다(?) 였다. 60년대에 대학 학창생활을 해보지 않았던 사람들은 당시 대학생들이 지닌 숨 막히는 시대상에 대한 애절한 마음과 고뇌를 제대로 이해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대선의 길목에서 당시 신문대학원 선배도 가끔 모종의 역할을 하는 것이 보이고, 후배가 인터넷 언론사를 운영하면서 모종의 역할을 하고 있는 느낌도 든다. 언론인의 사명은 무엇인가? 언론인은 이념적으로 대한민국 헌법가치에 충실해야 한다. 더욱이 기자 출신이라면 기자정신을 잘 지켜야한다.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는 토대는 권력을 견제 할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가슴속에 향유하는 것이다. 근자에 이르러 기자정신을 져버리는 일부 속칭 사이비 언론인을 가끔 보면서 신문대학원 입학 당시 ‘언론의 중립성이 무엇인가’라고 질문했던 면접 교수님의 말씀이 오버랩 된다. 더욱 언론이나 언론인이 미래 권력을 위해 꽤(?)를 부리기 시작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자유민주주의의 피해로 이어지게 된다. 애국을 빙자한 위선적 ‘글’은 그래서 더욱 자유민주주의 시장 경제에도 해악을 끼칠 수밖에 없다. ‘곡학아세’형 언론인과 미래 권력을 찬양(?)하는 언론이 눈에 띄게 늘어가는 대선의 길목에서 일부 언론인이 언론 본연의 사명을 져버리고 막무가내로 생산해내는 곡필이 그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것이라는 오만(?)에 사로 잡혀서는 안 된다. 언론인의 사명은 방기한 채, 이곳저곳 눈치 보며 오락가락하는 기회주의 언론인들이 눈에 띄는 것은 이 시대 최고의 불행이 아닐까? 언필칭 언론 실종의 시대를 실감케 하는 일부 사이비 언론인의 행태를 응시하면서 실로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언제는 책임 있는 정치인들이 6.15, 10.4 선언에 찬동하거나 북한의 천안함 폭침에 동의하지 아니하거나 침묵하는 사람은 친북 좌파라고 만방에 외치더니 이제는 그 친북좌파와 종북의 기준인 6.15와 10.4선언은 어디 가버리고, 슬그머니 침묵의‘오리발’을 내미는 사람이 있다면? 친북 종북의 기준이 임의대로 수시로 바뀌어서야 될 말일까? 세상은 참으로 변화무쌍하다. 언론의 가치도, 언론인의 가치도 권력 변동기엔 뒤바뀌는 것일까? *필자/야영태. 시인. 자유언론인협회장, 전 서울대 초빙교수,치의학박사 원본 기사 보기:브레이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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