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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풍경: 소주와 휴대폰과 하의실종

수십 년 만에 돌아온 글쟁이 눈에 비추어진 대한민국의 풍경

심상근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3/08/26 [14:11]

대한민국 풍경: 소주와 휴대폰과 하의실종

수십 년 만에 돌아온 글쟁이 눈에 비추어진 대한민국의 풍경

심상근 칼럼니스트 | 입력 : 2013/08/26 [14:11]
 
1970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때에 내가 기억하고 있던 대한민국은 2013년의 대한민국과 피상적으로 상당히 다르다. 그러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상당히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한 중년의 여성이 이야기를 하였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참으로 예의 바르고 언행이 단정해!” 그의 친구가, “어머, 그래? 왜 그렇게 생각하니?”묻자 대답하여 왈, “우리가 20대 때에는 젊은 남자 애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귀찮게 놀았니? 만날 말 붙이고 따라오고… 요즈음 20대들은 우리에게 전혀 안 그러잖아!” 
 
관측자인 내가 그 동안 한국나이로 27세에서 70세로 변한 것도 뭐 영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글쟁이로서 그 정도는 분별하여 객관화할 수 있기를 스스로 기대한다.
 
한국문화는 ‘탕’의 문화이다. 탕, 전골, 찌게… 가운데 놓고 나누어 먹는다. 심지어 수저가 마구 드나드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내가 가장 기절초풍하는 것이, 자기가 마시던 술잔을 내밀고는 술을 따라는 주는 버릇이다. 너와 내가 동성연애하는 사이었던가? 네가 입 대고 마시던 술잔을 왜 내게? 퉤퉤!! 미국에서 너무 오래 살다 온 놈이라고 욕해도 좋다. 이런 것을 금하는 무슨 공중보건법규가 있을 법하다.
 
물론 그 문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해한다. 그 것은 소월이 노래하던 ‘연민’의 정서가 좀 지저분하게 진화된 것이다.
 
소월은 왜 그렇게 노상 아픔을 노래했는가? 한민족의 대표적인 가락 ‘아리랑’은 왜 그렇게 한 맺힌 아픔을 노래하는가?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아프게 만들었는가?
 
‘연민’은 한민족의 종교이다. 서양인들이 예수를 믿어왔다면 한민족은 연민을 믿어왔다.
 
예전 아주 가난한 때에는 연민은 더욱 깊었다. 가난은 동물적인 외로움을 가져온다. 생에 대한 불안 내지 위협을 아련하게 느끼게 만든다. 그래서 친구 둘이 만나 한 방에서 잠을 자면 이슥하도록 말을 나누었다. 외로움은 인생에서 전우를 더욱 필요하게 만든다.  
 
후쿠시마 원전을 왜 하필이면 태평양 쪽에 지었나? 생각해 보면, 한반도에게는 일본열도가 방파제이다. 쓰나미를 일본열도가 막아준다.
 
예전에는 한반도가 일본열도를 위한 방파제였다. 한반도로 인하여 중국은 일본을 별로 침공하지 않았다. 못했다. 한반도와 제주도까지 중국영토였다면 일본은 중국과 몽고의 말굽에 여러 번 밟혔을 것이다.
 
그 덕분에 일본은 섬 안에서 자기들이 가장 잘 났다고 거들먹거리며 살 수 있었다. 사무라이들은 칼을 차고 활보하고 백성들은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한 엄격한 위계질서 속에 일본은 나름대로의 일본문화를 발전시켰고 꽃을 피웠다. 일본문화는 동양에서 가장 높다. 섬나라 근성으로 인하여 작은 것이 탈이고, 그래서 다른 동양 국가들에 대하여 상당히 오만한 것이 괘씸한 면이지만, 자체적 문화수준으로는 동양에서 가장 높고, 서양에 비교하여도 낮지 않다. 문화적으로, 말끔한 사람들이다. 한반도가 방파제 역할을 수천 년 해준 덕분에 고이고이 문화가 성장한 까닭이다.
 
반면, 한반도는 중국과 몽고의 말굽을 항상 의식하며 살았다. 그들을 ‘대국’이라고 불렀다. 세자책봉 등 중요 대사에서 시시콜콜 간섭을 받으며 살았다. 중국인들은 거의 모두가 한반도를 역사적으로 자기들의 위성국 내지 심지어 속국으로 간주한다. 일본은 36년 간 조선을 속국으로 삼았지만, 그 이전 수백 년 이상 한반도는 중국에게 속국으로 간주되며 살았다.
 
중국은 상시 존재하는 쓰나미였다. 한반도의 존재로 인하여 일본은 그 ‘중국 쓰나미’를 피할 수 있었다. 일본이 한반도로 인하여 수지 맞은 것은 6.25전쟁으로 인한 경기호황뿐 아니었다. 지금이라고 다시 남북한이 전쟁을 하면 일본은 수십 년 불황을 털어내고 우뚝 설 것이다. 삼성전자만 없어져도 다리 뻗고 잠잘 수 있을 것이다. 미국 때문에 휴전 중이지, 아니면 이미 다시 한 번 다시 붙었을지도 모른다. 반도에 갇힌 민족의 우매함이다. 일본인들이 섬에 갇혀 작아졌다면, 한민족은 대국 옆의 반도에 갇혀 못나진 경우에 속한다. 남의 나라는 한 번도 쳐들어가지 못한 채, 수백 년 사색당파적으로 서로 잡아 먹는 데에만 이골이 나있다. 못남의 극치이다. 한 번 다른 만족 다른 나라라도 쳐보았으면 존경할 만 하다. 
 
내가 현재 근무하는 회사의 임원 한 분은 중국 통이다. 그는 이야기하였다: “한국 기업이 처음에 들어갈 때에는 중국은 엄청 융숭하게 대접하였지요. 그러나 나중에는 한국기업들 손 털고 나오고, 장비, 기술 모두 중국인들에게 넘어가게 되었지요. 중국, 중국인들, 무섭습니다!”
 
한민족도 가난했지만, 중국도 가난했었다. 딸을 동네 부잣집 늙은이에게 첩으로 들여보내고, 돈을 받으면 그날 밤 온 가족이 그 동네를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것이 목숨을 건 약조이고 조건이었다. 그 딸은 자기 가족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며 살았다. 온 가족이 굶어 죽는 것보다는 그 것이 나았던 것이다. 그 것은 인생이 아니라 통곡이었다.
 
춘궁기에 굶어 죽은 사람들이 있을 수준의 가난한 삶은, 인생이 아니라 통곡이다. 박정희는 그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한국 기업이 처음에 들어갈 때에는 중국은 엄청 융숭하게 대접하였지요. 그러나 나중에는 한국기업들 손 털고 나오고, 장비, 기술 모두 중국인들에게 넘어가게 되었지요. 중국, 중국인들, 무섭습니다!” 이러한 중국진출에 관련된 이야기는 미국에 진출한 기업들의 경우, 전혀 해당사항 없다. 현대자동차는 미국 남부지역에 공장을 더 짓는다고 한다. 노조 때문에 망하지 않으려는 방책이라고 한다.
 
현대자동차가 공장들을 지은 지역을 ‘바이블 벨트’라고 부른다. 한국 말로 하면 ‘예수의 땅’이다.
 
한번 그 지역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소련이 붕괴한 후 그 지역 섬유산업을 첨단기술로써 도와줄 방도를 찾아보라는 정부시책에 따라 상급연구원으로서 방문한 것이다. 이틀 정도 머문 후 나는 그 곳을 떠나 렌트카를 운전하여 공항을 향하였다. 한 시간 정도 달리다가 뒷주머니를 더듬어보니 지갑이 없었다. 화장실에 들렸었는데, 떨어뜨린 모양이었다. 급히 차를 돌려 돌아왔다.
 
화장실에 들려보았으나, 한 시간이 지났으니 떨어뜨렸다 해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리 만무했다. 운전면허에서부터 크레딧 카드, 현재 한국 돈으로 치면 40만원 정도 현금 등, 몽땅 날라간 것이다.
 
나는 경비실로 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경비원들 서너 명이 싱글거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상황을 설명하자, 지갑의 모양과 내용물들을 설명하라고 한다. 그래서 대충 설명했다. 그러자 싱글거리며 지갑을 내주었다. 모든 것들은 그대로 있었고, 수십 만원 현금도 그대로였다. 누가 주어다가 경비실에 맡겼다고 한다. 그 것이 ‘예수의 땅’, ‘바이블벨트’의 모습이다. 어떻건 간에, 예수는 위대하다. 현대자동차가 그 지역에 공장을 자꾸 짓는 것은 당연하다.
 
대국이라지만 수십 만 수백 만이 봄이면 굶어 죽던 중국, 그 중국에 눌려 조공을 받치며 숨을 죽이고 살던 한민족, 한반도라는 방파제로 인하여 가난한대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던 일본, 그리고 멀리 태평양 건너 앵글로색슨이 주도하고 예수가 지배하는 미국. 한민족이 한에 어린 ‘아리랑’을 부르고 소월이 ‘연민’을 노래할 때, 중국인들, 일본인들, 미국인들은 무슨 노래를 부르며 살았나?
 
한국은 산이 많다 거의 모두가 급경사이고 대부분 험하다. 그 비탈만큼 기후도 혹독하다. 여름의 그 긴 장마와 무더위. 겨울의 그 혹한. 그리고 중국의 위압적 존재. 뉴턴이 중력을 이야기했는가? 한민족이 느낀 중력은 뉴턴도 계산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따금 끼는 동창들 산행 후 회식에서, 한 동기가 마시던 자기 잔을 내게 내밀었다. “야, 그냥 내 잔에 딸아!”하는 나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그는 잔을 내밀었다. 옆의 한 동기가 이 꼴을 보더니 그가 내민 잔에 술을 따라 채우더니 내 잔으로 옮겨 부었다. 일종의 절충안이다.
 
나는 외계인이다. 어릴 때에도 상시 오고 가는 친구가 별로 없었다. 이는 일생 동안 그러하다. 나는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이야기하는 것들 중 재미있는 것이 거의 하나도 없다. 요정에서 여자가 옆에 앉는 것도 질색이다. 내 여자도 아닌 여자가 친한 척 하면 등에 소름이 돋는다. 대접한답시고 나를 그런 곳에 모신 것은 나를 전혀 모르는 짓거리였다.
 
상시 출근을 시작한 후 나는 편도 10분 정도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 전철을 탄다. 버스는 1960년 대에 비하며 훨씬 양반이지만, 운전기사들은 대부분 버스를 스포츠카 식으로 몬다. 버스를 타는 신분의 국민들은 그런 험한 라이드를 당해도 불평을 할 권리가 없다는 심리인듯하다. 운전기사들이 나이가 좀 들은 아저씨들인 것도 그러한 난폭운전을 유발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자기가 좋아하는 뽕짝 노래를 크게 방송하는 아저씨들은 더 험하게 버스를 모는 경향이 있다. 무슨 규제라도 있을 성 싶은데, 대한민국 국민을 짐짝 취급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인 것처럼 느껴진다.
 
전철은 훨씬 행복한 공간이다. 급정거 급발진 하는 예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드물다. 나는 전철에서 앉는 적이 전혀 없다. 한쪽 켠에서 서서 간다. 주로 한 발로 선다. 균형을 잡기 위함이다. 그러다가 다른 발로 선다. 물론 한 발로 서있는 티는 안 낸다. 요즈음 매일 편도 한 시간 정도 전철을 타는데 항상 그렇게 균형을 잡는 일에 열중한다.
 
마음의 균형을 잡는 것은 더욱 힘들다. 학은 한 발로 서서 지낸다. 스마트폰도 없이 홀로 시간을 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학은 인간의 스승이다.
 
전철에 오르면 두 가지 현상이 여실하다. 스마트폰과 하의실종이 그 둘이다.
 
인간의 인(人)은 사람 둘을 의미한다고 한다. 서로 기대고 사는 것인 인간이다, 뭐 그런 의미라고 들었다. 전철의 한국인들의 경우, 그 둘은 사람 둘이 아니라 ‘사람과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을 빼면 모두 쓰러질 것이다.
 
물론, 호르몬 냄새가 많이 난다. 스마트폰의 가장 큰 용도는 젊은 또래 사이의 연계일 것이고, 이는 직간접적으로 이성과의 맺음을 목표로 하는 바가 클 것이다. 나이 70이니 잘 모르겠지만, 내 추측으로는 그렇다. 아니면 그렇게 골몰할 것 같지 않다. 길에서 걸으면서도, 전철 에스컬레이터에서도, 빌딩 엘리베이터를 타면서도 코를 스마트폰에 대고 있는 이유는, 아마 많은 경우, 호르몬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이는 그렇지 않아도 출산저하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대한민국 현실에서 극히 바람직한 현상이다.
 
부언하자면, 고로, 중년이 전철에서 휴대폰에 코를 박고 있는 모습은 보기에 이상하다. 옆에서 슬쩍 보면 대개 게임 중이다. “애들도 아니고…” 하는 생각이 든다.
 
게임은 자전거와 같다. 속도를 부여한다. 학처럼 홀로 서는 것이 아니라, 참새처럼 쉴새 없이 나르는 것과 같다. 그렇게 움직이는 동안은 번민도 없고, 학처럼 균형을 잡을 필요성도 없다.
 
게임은 술 마시는 것과 같다. 술을 마시는 것도 만사를 잊기 위함이다. 술을 마시면 복잡한 생각을 할 능력을 잃는다. 눈에도 대충만 보인다.
 
한국인들은 혼자 있는 것을 피한다. 휴대폰이 생기기 전에도 항상 떼거지로 살았다. 소주와 찌게, 탕, 전골은 한국문화를 버티어주는 것들이다. 그러한 한국인들에게 휴대폰은 신이 주신 은총이다. 이리떼 문화의 종결이다. 한국인의 반대말은 학이다. 한국인의 반대말은 백인이다. 한국인의 반대말은 일본인이다. 학과 백인과 일본인은 각자 선다. 그 것이 그들의 습성이고 문화이다. 한국인들은 떼로 산다. 그런 문화에서 신종 접착제로 등장한 것이 휴대폰, 스마트폰이다.
 
한국인들의 언어는 바보언어이다. 떼로서 살려니, 서로 좀 어수룩하고 뭐 그렇게 보이도록 노력한다. 각자 서는 백인들의 언어는 쨍- 하는 언어이다. 수학처럼 정확하다. 의사의 정확한 전달이 90%+의 목표이다. 한국인들 사이의 언어의 목표는 정의 전달이 90%+ 목표이다.
 
그러므로 TV 연속극들도 바보들의 행진이다. 영화들도 바보들의 행진이다. 정을 주고 받는 것이 목적이다. 내가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되도록 안 보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너무 촌스럽다. 그러나 정에 살고 정에 쓰러지는 한국인들에게는 그 것이 좋은 모양이다. 나는 원래 이방인이고 외계인으로 태어난 사람이다. 맵고 짠 음식도 입에서는 좋은데 몸은 싫어한다. 한국문화와 별로 궁합이 안 맞는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 이는 글쟁이의 속성이기도 하다. 니체는 나보다 더 했다. 매운 것을 먹으면 3일 간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안테나가 수백 배 예민하게 발달한 자들의 불행이다.
 
한국의 정치가 웃기게 돌아가고, “한 잔 하지!”하는 자들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유도 같은 이유이다. 홀로 서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이므로 사회정의를 이해할 수 없다. 끼리끼리 수지 맞추는 일 외에는 별로 개념이 없다. 몽고족의 한 때의 번영과 현재 한국의 번영이 동류라고 내가 분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촌스럽고 미개하다. 민초들이 마구잡이로 뭉쳐 지내는 것은 해독이 상대적으로 적다. 권력이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권력이 있게 되면 나라의 밑동이 흔들리고, 사색당파 싸움질에, 결국 한일합방 같은 것에도 이르게 된다.
 
액센트(accent)는 억양을 일컫는다. 어느 나라건, 수도 지역의 억양은 사무적이고 시골로 갈수록 뒤가 늘어진다. 수도 지역에서는 효율성이 필요하므로 말이 냉랭하고 사무적이고 효율적이다. 반면, 충청도 같은 시골에서는 상호 수더분하게 지내는 것이 상례이다. 특별히 잘난 사람들도 없고, 특별히 중요한 일도 없는 터에, 시골서 농사짓고 살자니 상호 친근한 유대를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충청도건 텍사스건, 시골에 가면 말이 또박또박 나오는 대신 정감을 표시하는 시골 억양이 나온다. “진지 잡쉈슈-“ 나는 여름방학 때 성환 외가 동네에 가서 지냈는데, 동네 어른을 만나면 그렇게 인사를 했다. 나는 삼분지 일 정도는 충청도 사람이다. ‘지랄’ 같은 속어를 자주 사용하는 것도 그 성환 신가리 동네 사람들에게서 물이 들은 바가 크다.
 
텍사스 사람들도 말을 끈다. “뭐라고?”할 때, 미국 동부 도회지 사람들은 “홧?” 그런다. “What?”의 깍쟁이 발음이다. 바쁘다. 효율적이다. 반면, 텍사스 사람들은 “우엇-?” 한다. 충청도 식으로 길게 눙치는 발음이다. 정의 전달이 중요하다. 상호, 너를 위하여 시간을 쓸 여유와 정성이 있다는 정서이다. 시골인심이다.
 
한국의 경우도, 경기도/서울 깍쟁이들의 발음은 효율적이다. 지방으로 갈수록 눙치거나 과장되게 친근감을 표하는 사투리 발음이 나온다. 그래서 코미디언들이 사투리를 자주 사용한다. 듣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투웽(twang)은 사투리와 유사한데 억양보다는 음감을 의미한다. 비음, 즉 콧소리를 가미하는 발음을 의미한다.
 
Twang은 기생의 억양과 공통점이 있다. 기생의 경우, 비음을 넣어 정감을 표시한다: “영감-!” 혹은 심지어 “여보옹!”
 
미국 백인 여자들은 좀 군인들 같다. 사납고 씩씩하다. 같은 백인 여자들 중에서도 유럽 쪽 여자들은 좀더 여성적이고, 미국 여자들이 군인 같다. 서부개척정신 때문이지도 모른다. 미국 여대생들이 가장 흔히 입는 복장은 청바지이다. 발목까지 덮는 긴 청바지를 즐겨 입는다. 남자들에게 가장 인간적으로 보이기 위함이다. 여자로 보지 말고 우선 사람으로 보라는 의미이다. 너와 내가 인간 대 인간으로 상호 존중할 수 있을 때, 그런 경우에만 마음을 열겠다는 그런 문화이다.
 
미국은 워낙 잘사는 편이기 때문에 삶에 대한 공포가 거의 없다. 그리고, 더욱 중요하기로는, 뭉쳐서 회동하는 적이 없으므로, 잘살아도 자랑할 데가 없고 가난해도 흉을 볼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처녀들도 마음에 드는 남자를 찾는 데에만 골몰한다. 그러므로 청바지 복장이다. 비싼 명품 청바지가 아니다. 그냥 수수한 청바지이다.
 
반면, 수백 년 수천 년 가난에 시달리고, 항상 부화뇌동하면서, 아파트를 상호 개방하고, 남편의 직위에서부터 자녀들 과외비 수준까지 서로 까발리고 자랑하는 문화인 한국에서는, 결혼 후 잘사는 것이 처녀들에게 아주 중요하다.
 
그 결과, 한국 TV 드라마는 부잣집에 시집가는 곡절이 주종을 이룬다. 그리고 현대 한국 젊은 여성들의 발음에는 twang이 상당히 강하다. 이는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나는 미국에서 살면서도 근 30년 간 백인 직장에서 근무하고 백인 동네에서 살았다. 애들 친구들도 모두가 백인들이었다. 그러다가 나이 50이 넘어서 향수병이 찾아왔던지, 한국교포 성당에 나가기 시작하였다. 30년 만에 처음 한국인들을 만나는 폭이었다.
 
나는 성당에서 한 때 청년부 부장을 하였는데, 그들은 둘로 나뉘었고 상호 왕래도 거의 없었다. 한 집단은 2세들로서,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어려서 이민 온 청소년들이었다. 이들은 상호 영어로 소통했고, 백인문화에 속했다.
 
다른 집단은 1.5세로 불리는데, 다 커서 이민 왔거나 유학생 신분이었다. 그런데 이 집단의 여자들은 말투가 콧소리를 넣은 어리광이었다. 그런 억양은 난생 처음 들었다.
 
내가 한국에 살던 때, 즉 1970년 이전에는 여자들은 그런 억양을 사용하지 않았다. 기생들 외에는 안 그랬다. 집안과 사회의 군기가 유교사상으로 인하여 엄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마 잘살게 되면서 문화와 환경이 확 달라진 모양이었다.
 
이에 대해서 미국에서 태어나서 큰 한국계 즉 2세들은 이질적으로 느끼는 모양이었다. 미국문화에서는 처녀들이 군인처럼 씩씩하다. 데이트를 해도 더치페이를 선호한다. 발렌타인데이 쵸콜렛 정도 외에는, 선물 같은 것은 마음을 허락하기 전에는 수용하지 않는다. 특히 값이 나가는 선물은 주지도 않지만 결코 받지도 않는다. 금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우월한 위치를 과시하면 그대로 차버린다. 엄청 사납다.
 
미국에서 성장한 한국계 2세들 사이에서 이상한 이야기가 돌았다. 한국에서 성장한 처녀들과 사귀니, 물질적으로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좋은 음식, 좋은 선물 그런 것을 원하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는 미국문화에서는 극히 괴이하게 받아지는 면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성장한 처녀들의 비음 섞인 억양에도 거부감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군인처럼 씩씩하게 이야기하는 미국문화 여성들에게 익숙한 2세 총각들에게는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미국 교포 중에서, 한국의 부잣집에 딸을 시집 보내게 되었는데, 결국 약혼을 파기했다고 한다. 요구사항이 미국 기준으로 황당했다고 한다. 예물은 몇 억 원 이상, 약혼식, 결혼식에는 연예인 급 가수들과 밴드 초청비용 부담 등, 흡사 두 회사 합병하는 식으로 조건들을 주르르 제시해왔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이 괴이한 짓에 어이쿠, 큰일날 뻔 했다! 하고 물러섰다고 한다.
 
수백 년 수천 년 잘먹고 잘살던 백인들의 문화와, 수백 년 수천 년 굶어 죽는 수준으로 가난하게 살다가 박정희 독재로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 한국인들 사이의 문화는 거의 극에서 극으로 다르다. 한국은 벼락부자로서 아직도 가난에 대한 공포가 잔재하고 고로 세세손손 잘 살만큼 돈이 많은 것이 극도로 중요하다. 동시에, 수저 몇 개 있는 것까지 상호 공개하며 경쟁을 하는 문화이므로 잘살지 못하면 깔 보인다.
 
성형수술이 성행하는 것도 이와 일부나마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TV 드라마 중 거의 99%가 상호 악을 박박 쓰면서 잘사는 집에 시집가는 이야기인 것도 같은 이유로 추정된다.
 
한국 전철은 외국인들이 보면 모두가 해변 행 관광기차로 오해할지도 모른다. 처녀들이 거의 모두, 해변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하의실종’ 복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눈에 그다지 섹시한 광경으로 안 보이는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러닝머신에 오르면 시속 9킬로에 놓고 30분을 뛰는 체력이지만, 어쨌든 나이 70이니 하의실종은커녕 상하의실종이라도 별 감흥이 없을 나이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둘째, 미안한 이야기지만, 광고판에 나오는 모델처럼 아름다운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치마를 입고 그 속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드는 전략이 훨씬 더 주효할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셋째, 극장에 처음 들어가면 눈이 캄캄하지만 이윽고 익숙해지는 것처럼, 하의실종 아니라 비키니 차림일지라도 하도 모두 그러고 다니므로 눈에 시들해지는 면이 있다. 실제로 긴 바지나 치마를 단정하게 입은 처녀들이 더 돋보이는 것은 나의 구식 눈의 탓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아이고, 2천 단어가 넘었는데 나도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다 모르겠다. 한 번도 읽지 않고 그냥 여기까지 써내려 왔으니 말이 되는 글이 되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이는 독자들 판단에 맡기고, 어느새 자정이 넘었으니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원본 기사 보기:브레이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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