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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박정희의 경제부흥과 문화 선진화

2대에 걸친 경제부흥과 문화 선진화에 대한 분석

심상근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3/08/12 [07:54]

박근혜-박정희의 경제부흥과 문화 선진화

2대에 걸친 경제부흥과 문화 선진화에 대한 분석

심상근 칼럼니스트 | 입력 : 2013/08/12 [07:54]
▲ 심상근 박사    ©브레이크뉴스
김기춘 전 법무장관이 8일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비서실장 임명장을 받았다. 73세의 노장이 허리를 90도로 굽히고 두 손을 공손히 내밀어 임명장을 받는 사진이 뜨자 각가지 이야기들이 뉴스로 떴다. 그러나,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거의 모두가 전혀 잘못 짚은 이야기들뿐이다.
 
박정희가 지금 대통령에 출마한다면 패배할 확률이 아주 높다. 아니, 대통령후보로 부상했을 확률도 아주 낮다. 아예, 정치계에 입문했을 확률도 아주 낮다. 한국정치는 극히 비열한 장이며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정치가들은 모두 파렴치한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확히 판단하자면, 정치를 한다는 것은 대부분 가문에게 욕을 보이는 것이다. 정치가를 배출한 학교들과 가문들은 민초들 앞에서 부끄럽게 느껴야 할 것이다. 이는 진실이다. 그 것이 한국정치의 실상이다.
 
오늘도 여와 야는 극한대치 중이다. 민초들 눈에는 극한대치를 할 이유가 없다. "반미하면 어떠냐?", "아내를 버리라는 말이냐?" 등으로 그의 정치적 노선을 분명히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에 관하여 좀 이상한 태도를 가졌다 한들 새삼 괴이할 것도 없다. 국정원이 대선개입을 했다 한들, 박근혜 후보와 사이가 엄청 나빴던 MB정권 때의 일이고, 투표 직전에 폭로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MB정권이 박근혜 후보의 등에 꼽은 마지막 비수였을 확률이 90% 이상이고, 어쨌건 하루에 하나 꼴도 안 되는 그 댓글의 영향은 박근혜-문재인 두 대선후보 간의 득표차100만표의 백분지 일, 천분지일도 안 될 것이었다. 그런 뻔한 일들을 두고 여야가 정치판을 깨고 극한대치를 하고 있는 것은 민초들에 대한 반역이다. 이러한 반역은 어제 오늘 시작한 일이 아니다. 조선왕조 시부터 줄기차게 지속된 정치인들의 반동이고 반역이다. 자기들의 이익 외에는 아무 것도 안중에 없다.
일반 시민들에게는 잘사는 것은 중요하다. 철인들이나 현인들이 극도로 가난하게,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고 사는 것은, 그들과 같이 뛰어난 사람들에게나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들은 두뇌가 천재적이므로 가만히 혼자 있어도 머리가 횡횡 돌아간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너무 오래 가만히 혼자 있으면 심심하여 애를 먹는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사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준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그러면, 거지라고 놀리고 하대하고 욕보인다. 그들은 마누라와 자식들이 없다. 자신이 가난한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마누라와 자식들이 배고프고 가난하고 업신여김 당하는 것은 눈에서 피눈물이 나온다. 나는 그 철인들과 현인들과 문인들의 주장을 존경하지만, 동시에,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잘사는 것이 단연 중요하다.
 
그래서 박통은 한강 다리를 건넌 것이다. 정치가들은 눈만 비- 뜨면 앞에서는 싸움질에 뒤에서는 부정부패에 골몰하고, 유명한 사람들은 ‘곡굉이침지’라면서 가난한 것이 문제가 없다고 설파한다. 그렇게 수백 년 살았고, 최대피해자는 인구 99.99%의 민초들이었다.
 
너무 오래 가난하면 문화라는 것도 근천스러워진다. 한국에서만 살아온 사람들은 한국인들의 행동을 인간사회 표준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예를 들어 앵글로색슨의 경우 엄청 더 신사적이고 정의롭고 양심적이다. 이는 미국에 거주하는 소수인종들이 거의 모두 동의하는 사실이다. 백인들이 주류인종인지라 공격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백인들이 가장 신사적이고 정의롭고 양심적이라는 점은 소수인종들은 거의 모두 인정한다. 그 이면에는, 수백 년 이상, ‘해가 지는 않는 제국’을 이끌어 온 승자들의 아량이 있다. 인심과 아량은 근본적으로 곡간에서 나온다. 수백 년 지독하게 가난하면 염치가 실종된다. 그리고, 오늘도 한국 정치가들은 그러한 가난으로 되돌리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그 피해는 99.99% 민초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박통을 직간접적으로 가장 괴롭힌 존재는 북한이었다. 북한은 박통의 경제부흥 노력을 극히 달갑지 않게 볼 이유가 있었다. 남한의 흡수에 막대한 지장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통이 겪는 저항의 가장 큰 줄기는 이 것이었다. 물론, 김지하시인처럼, 독자적인 생각으로서 반대를 하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 것은 큰 줄기는 아니었다. 결국, 박통은 육 여사와 자신의 목숨을 바치고서야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다.
 
나는 박통을 생각하면 눈물부터 앞선다. 애국이 그 정도로 외로운 것인 줄은 아마 박통 자신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채 한강 다리를 건넜을 것이다. 그러나 목숨을 바칠 가치는 있었다. 반세기 전만 하여도 수천만 민초가 다음 날 끼니를 걱정하던 세상에서, 이제는 너무 먹어서 헬스센터에서 일없이 뛰며 살을 빼는 세상이 된 것은 근본적으로 박통의 애국심 덕분이다.
 
그러나 수천 년 한민족 역사에서 지난 수십 년은 한 점에 불과하다. 중국처럼 모든 국민들이 잘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데 동의하여 경제부흥을 이루는 경우와, 한국처럼 오직 독재에 의하여 잘살게 만들어놓은 경우는 하늘과 땅 차이이다. 모택동은 문화혁명의 미명 하에 10년 간 수만 명을 처형하였고, 등소평은 천안문 사태 당시 수천 명을 사살하였다. 그러나, 중국 본토는 물론, 중국 밖에 나가 사는 화교들 중 99% 이상은 그러한 상흔에 대하여 일체 언급을 하는 적이 없다. 중국이 잘살고 강해지기 위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린 불상사로 치부한다. 그들은 뒤를 보지 않는다. 국민들이 잘사는 것, 나라가 강해지는 것, 그 것에 모두 합심이다.
 
반면, 한국의 경우, 모든 것은 정치싸움의 도구이다. 백 년, 천 년 가도 변함 없는 정치싸움의 도구이다. 조선왕조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이다. 경제는 뒷켠으로 밀어놓고, 자기 자식들 호사시킬 궁리에 모든 사안들을 동원하여 이를 악물고 정적들과 싸운다. 세상에 그렇게 이기적인 존재들이 없을 것이다.
 
박통이 강제로 경제부흥을 이룩하여 놓고 떠난 후, 한국정치는 도루아미타불 조선왕조 시대로 돌아갔고, 전두환-노태우의 수천억 원 뇌물착복, 현철사태-IMF금융구제 사태에 이어, 임기 말이면 가족과 가신과 측근들이 줄줄이 기소되고, 나라 빚을 태산처럼 지면서 각종 국책사업들을 밀어 음으로 양으로 인척과 동창들의 배를 불리어주는 정치행각들은 항상 현재진행형이었다.
 
그러한 정치판에서 박통의 맏딸 박근혜가 대통령후보가 된 것은 완전히 기적이었다. 그 기적을 구태여 분석하자면 아래와 같다:
 
1. 박근혜는 승부사이다. 당이 무너질 때 그는 10%도 안 되는 승률에도 불구하고 앞장을 섰다. 천막당사와 비상대책위원회는 그의 승부수였고, 그는 승리하였다. 박근혜는 천재적인 승부사이다. 타고난 것임이 틀림없다.

2. 여성이다. 박통을 극도로 적대시 하던 정치인들도 그가 여성이므로 혐오와 경계를 덜 했다. 민초들도 청아한 독신여성인 그를 살갑고 가깝게 여겼다.

3. 초인간적으로 근엄하고 근검하게 살았다. 이는 간디의경우와 비슷하다. 큰 뜻을 이루기 위하여 기인에 가까운 생활신조로써 일반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4. 수십 년 간 한 시도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그 부모님들의 애국심을 잊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 대한 극심한 존경심과 효도심이 그를 많이 도왔을 것이고 하루하루를 버티는 힘이었을 것이다.
 
부언하자면, ‘박정희의 딸 박근혜’와 가까운 것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빠르게 출세하는 길이었다. 일부 정치가들과 측근들은 이 면에서 극도로 이기적이었고, 충성을 빙자하여 박정희의 딸을 파렴치하게 이용하였고 매달렸다. 그 목적을 위하여 심지어 파렴치하고 심각한 범법도 서슴지 않았다. 이 글 서두에 기술한 바, 즉, "김기춘 전 법무장관이 8일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비서실장 임명장을 받았다. 73세의 노장이 허리를 90도로 굽히고 두 손을 공손히 내밀어 임명장을 받는 사진이 뜨자 각가지 이야기들이 뉴스로 떴다"라는 기사는 이에 관련된다. 즉, 박근혜 대통령이 8월 초에 청와대 내에서 크게 인사단행을 한 것은, 이제는 과감히 민초들만 보고 가겠다는 의미로 나는 분석한다. 조선왕조 이래 눈곱만치도 변한 것이 없는 한국 정치판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절실한 애국심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정치인은 그다지 많지 않으며, 김기춘 비서실장이 그들 중 하나이다. 어지러운 정치의 와중에 결국 김기춘은 박정희의 딸 박근혜의 애국을 보필하기 위하여 들어선 것이다. 아주 오랜만에, 이기심으로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충성이 박근혜 대통령을 찾아온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어깨는 아버지의 경우보다 더 무겁다. 당시는 우선 잘살게 되기만 하면 되었다. 봄이면 실제로 허기져서 병들고 심지어 굶어 죽는 국민들이 있는 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간단하다. 그 것은 전쟁과의 전쟁이었고, 전쟁은 항상 단순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대한민국은 가난해서 불행한 나라는 전혀 아니다. 사촌보다, 동창보다 아파트 평수가 작아서 불행하게 느끼는 나라이다. 세계에서 가장 잘살게 되어도 누군가는 그의 사촌과 동창보다 작은 아파트에서 살기 마련이다. 고로, 현재 대한민국을 주름잡는 불행은 ‘절대적 불행’이 아니다. ‘상대적 불행’이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상대적 불행’이 큰 나라이다. 그 이유는, 사람들 사이에 간격(space)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시골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대부분 도회지에 나와 살게 되었는데, 초등학교 동창회가 극도로 활성화 되어있다. 그들이 가장 즐기는 행사가 돌아가면서 자기 집을 개방하고 동창들을 대접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어느 동창 아파트가 더 큰지 모두가 알게 되고, ‘상대적 불행’은 거의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야기시킨다.
 
서양인들은 이웃 사이에서는 집을 개방하는 수가 있다. 서로 비슷한 처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창들에게 집을 서로 개방하는 일은 일반적으로 전혀, 절대 없다. 만나면 밖에서 만나고 헤어진다. 그러므로 서양인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직업을 갖는다. 반면 한국인들은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선호한다. 그 중 으뜸이 정치와 관리직이다. 부정부패는 한민족 문화 안에 암처럼 박혀있다. 수단방법을 가릴 틈이 없다. 동창들이 찾아온다.
 
나는 예전 칼럼에서 쓰기를, 나의 임종 시 다섯 명만 허용할 것이라고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성질이 지랄 맞은 면이 있기 때문에, 내가 죽은 것을 진심으로 슬퍼할 사람들은 아주 많아야 다섯 명일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므로, 다섯 명으로 정해 놓으면 인심 얻으려고, 인기 끌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어서 편하다.
 
만약, 가정으로서, 법으로 정하여, 결혼식에는 최대 30명, 장례식에는 최대 20명 참석만 허용한다면, 한국은 천국처럼 살기 좋아질 것이다. 그러면 평소에 싫은 놈까지 인사치레하며 지낼 필요가 없고, 주말에관혼상제 상호 쫓아다닐 필요 없고, 고로 가족들과 주말을 같이 지낼 수 있고, 좀 가난하건 잘 살건 큰 상관이 없다. 각자 제 멋에 맞추어 좋은 대로 살면 된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관혼상제 시 모두가 왕과 여왕이 되고 싶어한다. 수백, 수천이 상호 몰려다닌다. 그 지인들과의 관계유지에 온 평생 모든 것을 바친다. 지인이라야 돌아서면 서로 흉보고 헐뜯는 줄 알면서도 자식들 혼사에 수백, 수천을 동원하지 못하면 창피하게 여기는 관습, 죽어서 수백 수천이 몰려오지 않으면 창피하게 여기는 관습, 이 어리석은 관습에 목을 매고 인생을 허비한다.
 
이는 그 근원이 농경문화와 사색당파이다. 농경문화에서는 같이 모를 심고 그러기 위하여 모두가 함께 어울리는 것이 필요하였다. 그리고 사색당파를 통하여 재화가 분배되는 썩어빠질 폐습 때문에 오늘도 일가친척은 물론 동창관계를 유지하기에 일생을 바친다. 부부 간의 사랑도 통째로 이 제단에 희생된다. 주말이면 부부가 제각기 관혼상제에 참석하기에 바쁘다.
 
이러한 나라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힘들다.
 
지인이 입원한 한 병원 방문자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모녀가 들어왔다. 앉으면서 그 어머니는 딸에게 내뱉었다: "어이구, 저 병신 같은 것…" 그 딸은 눈을 깔고 듣고만 있었다. 그 어머니는 다시 그런 식의 저주를 딸에게 퍼부었다. 어머니를 닮아 좀 못생긴 편인 딸은 죄인처럼 가만히 있었다. 나는 울고 싶었다.
 
이기는 것, 부자가 되는 것이 유일한 목표인 한국에서, 그 딸은 이길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길 수 없는 것은 한국에서는 죄에 속하고, 그래서 그 딸은 체념하고 그 저주를 듣고만 있었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도 예쁜 여자가 부잣집에 시집가는 이야기가 주종인 이 한국 세상에서, 그 딸은 저주 받은 존재였다. 정말로? 왜? 왜 부잣집에 시집가는 것이 인생의 최대 목표이어야 하는데? 이 넓고 좋은 세상에서 왜 모두가 천편일률적인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친정어머니가 동창들과 모였을 때 자랑거리 더 많기 위하여? 초등학교 동창들이 번갈아 집을 찾아올 때 부끄럽지 않기 위하여? 인생이 고작 그런 것들에 모든 핀트를 맞추고 살아야 한다면, 인생이 너무 가엾지 않은가? 수십만 년이 넘는 인류 역사에서 단 한번 태어난 인생을 그렇게 살다 가야 하는가?
 
그러므로 잘살게 될수록 자살률은 높아지게 마련이다. 박통이 나라를 잘살게 만들어 놓기 이전에는, 인구 90% 이상이 극도로 가난했고 고로 서로 비교하고 자랑할 것이 도대체 없었다. "진지 잡수셨소?"가 가장 지대한 관심사였고, 진지만 서로 먹었다면 그 다음 일들은 소수점 이하였고 대수롭지 않았다. 그러다가 나라가 벼락부자가 된 후에는 아파트가 50평이냐 35평이냐에 따라 행복도가 다르고 심지어 죽고 싶어진다.
 
만약, 가정으로서, 법으로 정하여, 결혼식에는 최대 30명, 장례식에는 최대 20명 참석만 허용한다면, 한국은 천국처럼 살기 좋아질 것이다. 그러면 평소에 싫은 놈까지 인사치레하며 지낼 필요가 없고, 주말에 관혼상제 상호 쫓아다닐 필요 없고, 고로 가족들과 주말을 같이 지낼 수 있고 좀 가난하건 잘 살건 큰 상관이 없다. 각자 제 멋에 맞추어 좋은 대로 살면 된다. 이 제안이 웃긴다고 생각하기 전에, 한국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웃기는 것인지부터 성찰하기를 제안한다.
 
나는 칼럼을 쓴지가 30년이 넘는다. 대부분 미국 교포주간지에 썼었고, 정년퇴직 후 한국에서 지내면서는 주로 그 주간지의 국내 자매지 브레이크뉴스에 칼럼을 써왔다. 글을 쓴다는 것은 앓는 것이다. 그 것도 팔자소관이다.
 
글을 쓰면서도 지난 2년 간처럼 골몰하여 글을 쓴 적이 없었다. 수백 개의 칼럼을 썼다. 그 것은 근본적으로 박정희-박근혜에 대한 나의 충정의 발로였다. 역사를 만드는 영웅들이 있고, 그 것을 해석하고 기록하는 사람들이 있다.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존하는 존재이다.
 
안철수는 나의 인생을 바꾸었다. 안철수가 박근혜의 소위 대세론을 꺾지 않았던들, 나는 지난 2년 간 풀타임으로 칼럼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안철수를 근본적으로 의심한다. 국민들에게 박근혜가 조강지처 감이라면 안철수는 신여성 첩 같다. 내 판단이 100% 옳은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글쟁이로서 나의 감은 틀리는 적이 거의 없다.
 
2년 전, 그 이전에는 나는 utterplay.com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브레이크뉴스 2013년 4월 1일자에 사진과 함께 기술한 적이 있었다. 이는 원래 영어를 가르치기 위하여 고안한 나의 발명이다. 컴퓨터게임(비디오게임)을 하는데, 방송되는 영어를 복창하지 않으면 게임이 진행되지 않는다. 죠이스틱이나 단추를 아무리 눌러도 무반응이다. 그러므로 비디오게임을 하려면 소정의 영어를 복창하고, 그 다음 단계로서는 외워야 한다. 한국어로 방송하면 영어로 스스로 번역하여 외쳐야 한다. 예를 들어서, 학교나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친 후, 모두가 이 Utterplay로 시험을 칠 수도 있다. 그 동안 배우고 복습한 영어에 달통한 자는 비디오게임을 순조롭게 진행하여 점수를 올릴 것이고, 아니면 계속 막히는 통에 게임이 진행이 안 되어 점수가 안 올라간다. 그냥 시험치는 것보다 동기 면에서 이롭다. 비디오게임이라면 회를 치는 수가 대부분이므로, 그 것을 위해서라면 가장 게으른 자도 필요한 영어를 달달 외워올 가능성이 높다. 이는 비단 영어뿐 아니라 각종 외국어, 수학, 과학지식 등에 적용할 수 있다. 즉, 공부를 재미있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장초과학기술, 창조경제가 아니겠는가? 이를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도입하고 싶었다. 
 
2년 전 나는 이 게임을 개발하고 있었고, 시범을 위하여 점포도 임대하여 장비를 들여놓았었다. 그런데 안철수가 뜬 것이다. 나는 그 점포계약을 어렵사리 해지하고, 장비를 나의 아파트 빈방으로 옮기고 풀타임으로 칼럼을 쓰기 시작하였다. 오늘도 나의 아파트는 발 디딜 틈이 거의 없다. 2년 전 끌어들여온 장비들이 그대로 널려있다.
 
그래서 올해 초 나는 이 utterplay.com을 다시 시작하겠노라고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일이 생겼다. 그럴 참에 나를 찾아온 사람이 ‘힉슨’이었다. 나의 칼럼을 애독하던 그는 저녁을 사겠다고 하였다. 근 40년 글을 쓰면서독자의 초청에 응한 것은 처음이었다. 대한민국을 통째로 경제부흥을 시킬 수 있다는 식의 어조에 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에 대해서는 4월 5일자, 그리고 7월 25일자 칼럼에 기술하였다.
 
이는 진짜로 인류역사에 기록될 발명이다. 이에 대한 근래 내가 준비한 자료를 인용하자면,
 
"TTI(Top Textile International)에서는 인류역사에 기록될 것으로 저희 스스로 믿는 ‘기적적이고 혁명적인 합성섬유 쥬라실TM ’을 발명하였습니다 (참조:  www.기적섬유.com). 저희의 주장을 요약하여 말씀 드리자면, 이전에는 합성섬유가 ‘탄성’과  ‘부드러움’ 이 두 속성들을 동시에 지니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설이었습니다만,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저희 TTI는 이 두 속성을 동시에 갖춘 신섬유 쥬라실을 발명하였습니다.  이는 나일론, 폴리에스터 등과 동격인 신섬유의 탄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술한 ‘합성섬유의 근본적 불가능성’을 해결한 기적적인 섬유라고 저희들은 믿습니다.즉, 합성섬유에 있어서, 옷 모양을 견지할 만큼 탄성이 높으면 촉감이 뻣뻣하고 싸구려로 보입니다. 반면, 촉감이 부드럽고 고급으로 보이도록 가공하면 옷 모양을 견지할 수 없을 정도로 후줄근해집니다. 이와 같이 ‘탄성’과 ‘부드러움’ 사이에서 씨쏘게임이 벌어지며,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온갖 후가공 기법들이 연구되었지만 해결 되지 않았습니다. 쥬라실의 경우, 아무런 기법을 동원할 필요가 없이, 생산 시 ‘탄성’과 ‘부드러움’이 공존합니다. 이는 합성섬유 역사상 최초로 이루어진 기적적이고 혁명적인 발명입니다.  그 외에도, 쥬라실은 항균, 항곰팡이, 흡습성 및 속건성, 탈취기능, 정전기 부재, 벌키성, 원적외선 치유효과 등 수많은 유익한 기능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기존 섬유들의 경우, 그 중 한두 가지 기능을 부여하기 위하여 온갖 기법들을 사용하고 있는바, 쥬라실의 경우 생산 시 이미 그 모든 기능들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를 확인한 전문가들은 아연실색합니다. 
 
저희의 생각으로는, 쥬라실 섬유는 궁극적으로 전 세계 합성섬유의 대부분을 대체할 것이며 면섬유도 대부분 대체할 것이며 심지어 모섬유의 일부도 대체할 것으로 추정합니다." (인용 끝)
 
수천 년 인류 역사에서도 좀처럼 찾기 힘든 대발명을 목격하고 나는 감격하였다. 세상에 나서 그러한 광경을 목격하는 것 자체가 영광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거대한 발명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라는 명제에 집착하게 되었다. 성공보다는 성공의 관리가 더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요즈음 아침 8시면 집을 나서서 저녁 늦게야 귀가한다. 내가 가장 집중하는 대목은 이 사업의 연속성이다. 특허는 17년 간 유효하다. 차차 매출을 늘려 년 5백조 원이 넘는 세계섬유원사시장을 석권한다 해도, 17년 후에는 임금이 낮은 국가들이 치고 들어올 것인데, 그러면 그 동안의 흥청망청 경제가 오히려 우환이 될 것이다.
 
그 것을 막고 100년, 300년 이상의 장수를 하는 것이 회사에게나 국가에게나 유익하고 필요할진대, 이를 어떻게 이루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에 나는 매달려 있다. 5백조 원 원사 시장을 너머서 그보다 수백 배 이상 되는 섬유관계 산업의 진흥은, 쥬라실 회사뿐 아니라 유관 국내업체들과 정부에게도 심대한 관심사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나는 고민을 했다. 2년 간 방치했던 utterplay.com 사업을 재개하려던 참에 이 쥬라실 사업에 너무 깊숙하게 관여된 것이다. 이 둘 사이에 번민하는 나에게 쥬라실 측에서는 ‘부회장’ 직함이 인쇄된 명함을 안겼다. 쥬라실과 같은 큰 발명을 성공적으로, 장기적으로 매니지하려면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사양 끝에 일단 받아는 놓았지만, 2년 간 아파트 여기저기에 가득히 쌓여있는 장비들을 보면 번민이 들 때도 있다. Utterplay는 기술적으로 훨씬 더 흥미 있는 사업이다. 그러나 쥬라실은 수천 년 인류역사에서도 희귀한 대발명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운에도 운명적으로 결부될 수밖에 없다.
 
안철수 때문에 얽힌 박근혜 대통령과의 인연이 이제는 쥬라실 때문에 얽히게 될 것 같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모든 창조과학기술을 모두 합쳐도 이 쥬라실의 백분지 일도 안 될 것이며, 정부는 필히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쥬라실은 원사, 즉 섬유원료이다. 이를 기화로, 의류패션, 침장류, 부직포 등 온갖 섬유관련 시장들이 홀라당 뒤집어질 것이다. 생각만 해도 무서워서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다. 이를 어떻게매니지하느냐에 따라서 TTI회사는 물론, 대한민국의 국운이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다.
 
어쨌든 내 팔자에 일복은 타고난 듯하다. 다만, 쥬라실이 대한민국의 경제부흥을 넘어서, 문화의 선진화에도 기여하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더 잘산다고 더 선진화되는 것 아니다. 그렇다면 오일 많이 나는 나라가 가장 선진화되었을 것이다. 오일 많이 나는 나라처럼 되는 대신, 차곡차곡 문명과 문화를 쌓아온 영국과 불란서와 스위스와 같은 선진국이 되는 것이 필요하다. 아니면 자칫, 쥬라실이 한국 땅에서 발명되지 않으니 만 못하다. 벼락부자의 병폐들은 더 많은 돈이 들어온다고 개선되지 않는다. 그 것이 필히 풀어야 할 고민이다. sheem_sk@naver.com

*필자/심상근. 미 버클리대 박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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