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많은 사랑을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직 업(業) 끝나지 않았는지 노년에 와서도 주책없이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어보면 가슴이 설렙니다. 주책이 없어 그럴까요? 아직 만년 청춘을 구가(謳歌)해서 그럴까요? 아마 마음만 청춘이라 그렇겠지요. 아무래도 아직 망상(妄想)을 털어내지 못한 중생이라 그럴 것입니다.
조선 성종시대 ‘송도 3절(松都三絶)’이 있었습니다. 박연폭포 · 서경덕과 함께 기생 황진이(黃眞伊)를 일컫는 말이지요! 황진이(생몰연대 미상)는 재색을 겸비한 조선조 최고의 명기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든 선비들과 어깨를 겨누고 대화하며 뛰어난 한시나 시조를 지었지요. 가곡에도 뛰어나 그 음색이 청아했으며, 당대 가야금의 묘수(妙手)라 불리는 이들까지도 그녀를 선녀(仙女)라고 칭찬했습니다.
황진사의 서녀(庶女)라고도 하고 맹인의 딸이라고도 하는데, 일찍이 개성의 관기가 되었지요. 15세 때 이웃의 한 서생이 황진이를 사모하다 병으로 죽게 되었는데, 영구가 황진이의 집 앞에 당도했을 때 말이 슬피 울며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를 본 황진이가 속적삼으로 관을 덮어주자 말이 움직여 나갔죠. 이 일이 있은 후 기생이 되었다는 야담이 전해 옵니다. 기생이 된 후 뛰어난 미모, 활달한 성격, 청아한 소리, 예술적 재능으로 인해 명기로 이름을 날렸죠. 화장도 안 하고 머리만 빗을 따름이었으나 광채가 나 다른 기생들을 압도했습니다. 수많은 한량(閑良)들이 황진이의 사랑 찾기에 나섰습니다. 그럴 때 마다 내 세우는 조건이 ‘점일이구 우두불출(點一二口 牛頭不出)’이라는 수수께끼였습니다. 이 수수께끼를 풀면 받아드리겠다는 것이죠. 황진이는 자신을 사모하는 한량이나 선비를 모두 이렇게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의 글을 풀고 사랑을 나눌 임을 기다리며 평생 기생으로 가무와 글을 익혔죠. 그러던 어느 날 남루한 중년의 선비가 기생집에 들었습니다. 기생집 하인들은 초라한 그를 쫓아내려고 했죠. 이 소란을 목격한 기생은 선비가 비록 남루하지만 범상치 않는 기풍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대청에 모시고 큰 주안상을 봐 올린 후 그 선비에게 새 지필묵을 갈아 이렇게 써 보였습니다. 『點 一 二 口 牛 頭 不 出』 선비는 기생의 글귀를 보고 빙긋이 웃었습니다. 기생의 명주 속치마를 펼치게 한 후 단필로 이렇게 썼죠. ‘허(許)!’ 순간 기생은 그 선비에게 일어나 큰절로 삼배를 올렸습니다. 절 삼배는 산 자에겐 한번이고, 죽은 자에겐 두 번이고, 세 번은 첫 정절을 바치는 남자에게 하는 여인의 법도입니다. 또 신하가 임금에게 하는 하례(賀禮)이기도 하죠. 그날 밤 선비와 기생은 만리장성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보름이 지난 후 선비는 문창호지에 시 한수를 적어 놓고 홀연히 길을 떠났습니다. 「물은 고이면 강이 되지 못하고/ 바람이 불지 않으면 꽃은 피지 아니한다./ 내가 가는 곳이 집이요 하늘은 이불이며/ 목마르면 이슬 마시고 배고프면 초목근피가 있는데/ 이보다 더 좋은 세상이 이디 있느냐」 이후 황진이는 그를 잊지 못하고 뼈에 사무치도록 그리워했습니다. 그리고 비단 가죽신발을 만들며 세월을 보냈죠. 풍운아인 선비의 발을 편안하게 해주고 싶은 애틋한 사랑에 손마디가 부풀도록 가죽신발을 손수 다 지은 것입니다. 황진이는 마침내 가산을 정리하고 그 선비를 찾아 팔도를 헤매고 다녔습니다. 어느 날 선비가 어느 절에 머물고 있다는 풍문을 듣고 찾아가 극적으로 재회를 했습니다. 황진이는 선비와 꿈같은 재회의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는 선비를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했죠. 꿈같은 재회의 첫 밤을 보낸 다음날 해가 중천에 올라도 움직일 기색이 없는 선비에게 기생이 물었습니다. “낭군님 해가 중천인데 왜 기침하시지 않으시는지요?” 그러자 선비는 두 눈을 감은 채 이 절간엔 인심이 야박한 중놈들만 살아 오장이 뒤틀려 그런다고 했습니다. 진이는 선비의 말을 즉시 알아들었습니다. 급히 마을로 내려가 거나한 술상을 봐 절간으로 부리나케 돌아왔죠. 그런데 하룻밤 정포를 품었던 선비의 방 앞 툇마루엔 선비 대신 지난 밤 고이 바쳤던 비단가죽 신발만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수년을 찾아 해맨 끝에 재회한 선비가 홀연히 떠나버린 것을 알고 기생은 망연자실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선비의 고고한 심정을 깨달은 황진이입니다. ‘선비의 사랑은 소유해도 선비의 몸은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을 깨우친 것입니다. 황진이는 선비의 깊고 높은 큰 사랑을 받았다는 것으로 스스로 위로하며 평생을 선비를 그리워하며 살았다고 하네요. 황진이가 평생 그토록 사랑한 남자는 화담(花潭) 서경덕이었습니다. 황진이를 만났을 때 서경덕이 황진이의 글 뜻은 ‘點一二口는 글자 그대로 一二口, 글자를 모두 합치면 말씀 ‘言’자가 되고, 牛頭不出이란 소머리에 뿔이 없다는 뜻으로 牛(우)에서 머리를 떼어버리면 午(오)가 된다고 읽었습니다. 이 두 글자를 합치면 허락할 許(허) 자입니다. 결국 황진이는 서경덕에게 자신을 바친다는 뜻을 이렇게 시로 전한 것이죠. 이 글자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라면 자신을 송두리째 바쳐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 황진이의 기발한 사랑 찾기가 절묘하지 않은가요? 어떻습니까? 이런 사랑 해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불보살들은 이 천지를 편안히 살고 가는 안주 처(安住處)로 삼기도 하고, 일을 하고 가는 사업장을 삼기도 하는 것이죠. 또한 이렇게 사랑을 하며 유유자재(愉愉自在)하게 놀고 가는 유희장(遊戱場)을 삼고 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청춘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이제는 꿈속의 또 꿈이지만 마음이 애련(哀憐)해지네요! duksan4037@daum.net *필자/김덕권. 시인. 칼럼니스트. 원본 기사 보기:브레이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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