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하루를 생활하는 동안 가끔씩은 혼자 생각해보고 싶을 때가 있다. 필자도 그러고 싶을 때가 많지만 그런 시간이 나지 않아 힘겹다. 새벽잠이 많은 필자는 새벽에 일어나 시간을 갖는 것도 어렵고, 주간에는 이 일 저 일을 맡아하느라 여유가 없다. 또한 저녁이나 밤에도 지인들이나 문인들을 만나 이런 저런 생활 이야기, 예술 등 화제로 꽃을 피우다보면 혼자만의 시간을 내어 골똘히 생각하고 사색할 시간적 여유가 항상 아쉬운 편이다.
지난해부터 산행으로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데, 주말에는 한번 씩 등산을 하거나 경관 좋은 곳을 다녀오는 것이 나에게는 낙이기도 하다. 유명한 등산가에 대해 알아도 보고, 등산 명언이나 등산에 관한 책도 읽어보며, 우리나라의 산이나 강 등에 대해서도 지식을 얻을 시간을 갖는다. 그렇지만 등산을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들과 가까운 산행을 다녀오면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한주일 동안 피곤해진 정신과 육체를 다스리는 정도로 행하다 보니 나 자신에 대한 책임감도 우려 나고, 생활에 또 하나의 재미를 붙일 수 있어 좋다. 등산을 통해 우리나라의 산과 바다, 강을 자주 접하면서 그 좋은 경치들을 마음에 담는 일들은 소중하다. 아마추어의 입장에서도 그러할진대 프로 산악인들의 느끼는 등산의 묘미는 더할 것이다. 전문 등산인의 강인한 의지와 체력을 닮고 싶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산악인 가운데 저서까지 내놓은 사람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가운데 이탈리아의 전문 산악인 라인홀트 메쓰너의 경험은 나의 마음을 뒤흔든다. 그는 이탈리아의 돌로마이트 지방 출신인데, 그 지역엔 바위산이 많아서 어릴 적부터 암벽타기 등을 많이 경험하여 체질적으로 자연스럽게 암벽전문 등산가가 되었다. 그는 무산소로 에레스트 산을 등정하였고, 히말리야 십사봉을 제일 먼저 올랐다. 또한 팔천미터 이상의 히말리야산에서 알파인스타일로 등정을 했는데, 대부분 단독으로 쾌거를 이루어낸 생존하는 인물이다. 초인적인 기술과 지구력을 겸비한 메쓰너에 호감이 가는 것은 저술에도 재능이 있어 등반에 관련된 책과 저술이 많다는 점이다. 메쓰비가 쓴 글 중에는 혼자 등반을 가면서 어렵고, 외롭던 시기에 자신의 내면을 다스리는 글이 있는데, 이 글을 필자가 좋아한다. “걷는 기술은 옳은 길을 가는 데 있다. 그 길에는 친구가 있고 그 길에서 너는 강해진다. 할 수 있다면 마음에 있는 쪽으로 가라. 자기 길을 찾아 갈 때 힘이 되고 방향이 되며 목표가 된다. 아무 것도, 그 누구도 너를 막지 못한다” 아마 이 내용은 다른 사람을 향한 것보다 자신에게 한 인생의 교훈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기 길을 찾아 갈 때 힘이 되고 방향이 되며 목표가 된다”는 말은 나에게 많은 격려가 되고 힘을 준다. 필자는 그 말을 생각하면서 “과연 나의 길은 어떠한 길일까?” 궁금증을 가지면서 나 자신에 대한 물음을 주는 화두로 내던지기도 한다. 평소에 사람이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라 생각하고 있는 필자는 현재 내가 가고 있는 길에 대해서도 타인들이 무엇이라 평가할까 생각날 때가 있다. 내 이름은 손경찬이다. 한자로 써 보면 경사 경(慶)자에 도울 찬(贊)인데, 해석하면 ‘경사가 되도록 돕는다’는 뜻이다. 이러한 내 이름은 순전히 남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운명적인 이름 같이 느껴진다. 내가 살아온 날들을 회상해 봐도 그렇고, 또 현재의 일상 속에서 맞이하게 되는 많은 사람들과의 인간관계가 그렇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바쁘게 살면서도 남을 위한 일에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성격이다. 평소에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사소한 문제가 발생할 때도 어김없이 연락을 해온다. 그래서 항상 바쁘게 뛰어다니는 팔자다. 그러다보니 남의 조그만 일에도 나의 일처럼 관심을 갖는다. 오죽했으면 나한테까지 말했을까 하는 생각에 그 사람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한다. 설령 목적달성에 이르는 결과가 없더라도 당사자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로 인격적으로 대해주고 설명한다. 서로에게 인격적으로 대하며, 최선을 다해 잘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최선을 다하다보면 결과가 설령 만족한 상태가 아닐지라도 상대방이 나를 선뜻 이해해준다. 그러나 남의 사정은 감안하지도 아니한 채로 자기가 편한 입장에서 하나의 사실을 단정해버리는 타인의 행동을 보면 분노가 치솟기도 한다. 그럴 때에 결국 참을 수밖에 없지만 내 마음은 오래도록 유쾌하지 못하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어려운 것이다. 사회활동을 하면서 참으로 좋은 인간관계는 ‘걷는 기술은 옳은 길을 가는 데 있다’는 메쓰너의 말처럼 옳은 길을 가려는 의지와 행동, 그리고 부끄럽지 않은 단호함에 있음을 항상 필자는 염두에 둔다. yejuson@hanmail.net *필자/손경찬. 칼럼니스트ㆍ예술소비운동본부장, 경북매일신문에서 매주 등산기 연재 중 원본 기사 보기:브레이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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